일정 금액 이하 금융분쟁 분조위 조정안 수락 시 금융사 반드시 따르도록
분쟁 장가화 방지 위해 도입...이의 및 불복 절차 보강에도 악성 민원 등 우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월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보험업권에 '소비자 보호' 강화를 주문했다. [사진=장선영 기자]](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11/238692_278310_3932.jpg)
정부가 신속한 분쟁 해결을 통한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추진 중인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두고 최근 금융당국이 세부적인 방향을 언급하면서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 금융사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많은 민원을 받고 있는 보험사들은 자칫 편면적 구속력 제도로 인한 부작용까지 커질까 우려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한 언론 행사에서 편면적 구속력 제도와 관련한 진행 상황을 언급했다. 편면적 구속력 제도는 일정 금액 이하 금융분쟁에서 민원인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수락할 경우 금융사가 반드시 이에 따르도록 해 소송으로 장기화되는 분쟁을 막는 취지다.
현재는 해당 제도가 없아 금융사가 조정안을 거부하면 조정이 성립하지 않아 분쟁조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원장은 “제도는 현재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며 1000만~1500만원 수준에서 편면적 구속력이 발동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며 “금융회사의 이의제기·불복 절차도 함께 보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험업계는 해당 제도가 도입될 경우 업권에 미치는 파급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금융민원 11만6338건 가운데 보험 관련 민원은 5만3450건(45.9%)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이 중 보험금 산정·지급 관련 민원이 2만5001건으로 가장 많았고, 면부책 결정 민원도 5673건에 달했다. 소액다건 분쟁이 많은 업권 특성상 편면적 구속력이 바로 리스크 요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성 민원인 증가나 불법 민원대행업체 확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를 감안해 보험업계는 일본·호주 등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예외 규정을 놓는 방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경우 금융사가 조정안에 불복할 시 1개월 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 금융회사의 재판 청구권을 보장한다. 기한 내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조정 결정이 확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10월경 관련 사항을 금감원과 소통하면서 “해외 사례나 예외적 조건들을 참고해 몇 가지 의견을 전달한 적이 있다”며 “금감원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제도 취지와 달리 소비자 보호 실효성이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 분쟁조정은 법리보다는 소비자의 억울함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조정 성격이 강했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편면적 구속력이 부여되면 조정안이 사실상 ‘준사법적 결정’ 성격을 띠게 돼 금감원도 법원처럼 정치·여론 부담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판단이 법리 중심으로 기계화돼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 금감원의 업무 효율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000만원 이하 소액 분쟁은 사실상 항변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처리하면 돼 실무는 오히려 간소화될 수 있다”며 “쟁점이 큰 사안은 기존처럼 소송을 통해 해결하되, 반복적이고 단순한 소액 청구는 처리 기준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효성에 대한 문제도 남는다. 올해 상반기 금감원에 접수된 1만9069건의 분쟁 민원 중 분쟁조정위원회에 회부된 건수는 8건(0.04%)에 불과했다. 최근 10년간 조정위 회부 건수 역시 연간 10~30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제도 적용 대상 자체가 극히 적어 실질적인 소비자 혜택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와 보험사 모두 비용 대비 실익을 따져 분쟁조정위원회까지 가기 전에 합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돼도 분쟁조정위원회 회부 건수가 크게 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