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 있다

오솔길에는 살아있는 모든 이가 들어가야 했고

뒷걸음질로 나올 수 없었고

살아야 들어가지만

또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나는

왼쪽 길로 나아갔고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나는 오른쪽 길로 나아갔다

그걸 알기에

두렵지 않았고

오른쪽 길로 가는 또 다른 나에게 행운을 빌었다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에서

끊임없이 왼쪽 길로 나아가

시공간이 휘어진 곳에서

출발점으로 다시 오길 바랐고

수많은 또 다른 나를 만나길 바랐다

정원 어딘가에서 나는 승자였고

정원 어딘가에서 나는 패자였다

오솔길 어딘가에서 나는 기뻤고 또한 노여웠고

오솔길 어딘가에서 나는 사랑했고 또한 아팠다

각자의 정원과 오솔길에선 파도가 높았지만

전체 정원과 오솔길에선 파도가 평온했다

그걸 알기에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고

편안해도 편하지 않았다

정원과 오솔길에서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멈추고

나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과 숲과 바다와 호수를

본다

그 순간 미로는 멈추고

나는 다시 출발점에 선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남미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에 나오는 단편소설 제목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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