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22일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에서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 있다. [파이낸셜포스트 DB]](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407/209420_212141_5210.jpg)
세상에 위험한 것이 많다고들 하지만 가장 큰 리스크는 기업의 오너 리스크가 아닌가 싶다. 개인 자신만의 문제로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거느리고 있는 직원과 그 가정, 해당 조직을 넘어 업계와 경제계 전체로 미치는 여파가 크기 때문이다.
LG그룹 총수 일가에서 보기에도 불편한 가내 송사가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故 구본무 전 회장의 사모인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가 상속재산 재분할을 요구하며 상속회복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들이 굳이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소송까지 낸 배경에 대해 사모가 옆 사람들에게 휘둘린다든가 뒷소문 안 좋은 사위가 소송 제기를 부추겼을 것이라는 등 소문만 무성하다. 최근에는 LG그룹에 평생을 다 바친 원로들조차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요지는 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전통과 인화(人和)를 내세운 창업정신, 경영이념을 훼손시키면서까지 가족간 분쟁을 지켜보는 안타까움이다. 세 모녀가 회사에 어떻게 얼마나 기여한 것인지, 이들이 물려받은 재산이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르나 현재 비상경영 상황에 놓인 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집안 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어렸을 때 집안 어르신들이 가볍지 않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부친이 부정한 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이를 경찰서에 신고해 처벌까지 받게 된 사연의 신문 기사를 놓고 어르신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내놨다.
최종 결론은 아무리 사회적 정의가 바람직하고 중요하나 부자 관계라는 천륜을 어기면서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재계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는데 그룹의 총수 지위를 장자가 상속·승계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 이유로 구인회 창업주와 구자경 회장, 구본무 회장, 구광모 회장으로 이어지는 LG가의 승계에 관한 전통적 원칙이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구본무 회장이 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그룹 원로들과 고락을 함께했던 고인의 뜻이 집안에서 분쟁을 촉발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구 회장이 사업을 이끌어갈 가장 뛰어나고 실력 있는 리더이고 판단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후계자로 지목된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흔하게 연출되는 영화 속 장면처럼 사업과 경영은 뒷전이고 돈 욕심으로 총수 일가에서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면서 나온 결론이 아닐 것이다. 언뜻 보면 너무 흔해 보이는 ‘인화’라는 경영이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중시하고 화합하는 조직의 운영이야말로 성공과 승리의 밑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 가정의 안정과 평화도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굳이 천륜과 고인의 유지를 훼손하면서 ‘골육상쟁’으로 보이는 소송에서 실익이 있을지도 모르나 기업 오너 리스크는 더 큰 걱정거리다.
그룹 총수가 갖는 막중한 책임과 권한은 개인의 판단 수준을 넘어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발전시켜야 하는 무게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은 사적인 영역을 넘어 사회적 기구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그 수장은 조직 구성원들의 안녕과 번영을 책임져야 한다. 잘못된 상속이 아닌 준비된 경영승계 결과를 뒤집으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송사는 빨리 정리돼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