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막걸리를 좋아하는가. 생막걸리는 유산균이 살아있다. 마트에 진열된 후에도 발효를 거듭해 탄산이 부풀어 오른다. 플라스틱으로 병을 만들고 뚜껑엔 미세한 구멍을 내고 흘러나오지 않게 세워 보관한다. 

막걸리를 뿌옇게 만드는 ‘지게미’엔 유산균, 아미노산, 식이섬유 등 영양이 풍부한데 병 아래쪽에 쌓인다. 흔들어 섞은 뒤 병뚜껑을 따면 탄산이 솟구쳐 낭패를 본다. 어떻게 할까.

방법1은 섞지 않고 뚜껑을 열어 탄산을 내보낸 뒤 다시 닫고 섞는다. 방법2는 섞은 뒤 병을 가로로 눕혀 서너 번 굴린다. 방법3은 섞은 뒤 뚜껑을 숟가락으로 서너 번 때린다. 방법4는 섞은 뒤 병의 몸통을 몇 초간 꾹 누른다. 방법5는 윗부분 맑은 술을 조금 마신 뒤 뚜껑을 닫고 섞어 마신다. 가장 안전하다.

방법6은 섞은 뒤 병의 몸통을 감싼 비닐을 떼어낸다. 허리띠를 풀 듯 병이 부풀어 공간이 생긴다. 비닐을 미리 떼면 분리수거가 쉬워 ESG 환경보호에 적합하다. 재미있지만 병뚜껑 따는 예능을 위해 막걸리를 마시진 않는다. 막걸리 자체가 맛있어야 한다. 지친 삶을 위로하는 건강한 음주, 그게 막걸리 업의 본질이다.  

조각가 헨리 후는 커다란 ‘바코드’ 작품을 설치하고 ‘Love the moment, this moment is everyth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디지털 세상을 반기면서 다시 오지 않을 아날로그 세상을 즐기라고 한다. 디지털이 대세지만 좋은 상품 없이 첨단 기술만으로 성장하긴 어렵다. 

상품을 구입하면 대금을 결제한다. 지폐, 동전, 신용카드, 모바일 페이가 결제수단이다. 식당에선 인건비 절감과 신속한 주문, 결제를 위해 식탁 위에 ‘패드’가 설치되고 있다. 마트에선 물건을 구입하고 셀프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어 결제한다. 편의점, 아이스크림, 사진관 등 무인 매장도 증가한다. 미국 ‘아마존고’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Just walk out’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등록된 손바닥 정보 등으로 인증한다. 상품을 선택해 들고 그냥 나오면 결제된다. 성과는 아직 낮다. 왜일까. 특유의 상품이 없고 값도 싸지 않다.

신선 상품을 판매하는 ‘아마존 프레쉬’는 AI를 활용하고 ‘아마존 프라임’ 고객에게 할인한다. 성과는 크지 않다. 최저가 상품을 파는 오프라인, 온라인 경쟁업체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은 오프라인 업체 ‘홀푸드 마켓’을 인수해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 아직까진 상품 자체의 품질과 경쟁력이 중요하다. 주문, 결제 등 신기하고 편리한 디지털 기술은 호기심에 그친다. 미래도 그럴까. 

우리는 빵 봉지 안에 있는 스티커를 구하려고 먹지도 않는 빵을 산다. 막걸리 병뚜껑 따는 재미를 위해 막걸리를 살 수 있다. 골프를 하지 않고 사진을 찍기 위해 골프장에 간다. 백화점 VIP 멤버쉽을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한다. 상류층이거나 그렇게 보이려고 고가의 명품을 산다. 고가의 아파트 단지는 주거를 넘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제공한다. 커피맛보다 리버뷰(river view)를 즐기러 근교 강변 커피샵을 찾는다. 빵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빵지순례’를 간다. 빵이 맛있다는 이유로 가기엔 지나치게 멀다. 평점 높은 식당 앞엔 기다리는 줄이 길다. 빵, 음식보다 기대감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자기가 아끼는 가상공간 아바타를 위해 온라인에서만 쓸 수 있는 명품 의류, 가방을 사주고 자랑한다. 미래는 상품 자체의 기능과 역할을 뛰어넘어 잊지 못할 경험을 팔고 사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품질에 더해 디자인에 집착한 이유를 기억하자. 좋은 상품을 만들었다고 잘 팔리는 때는 지났다. 과거 업의 본질에 갇혀있어선 안된다. 

종전 사업을 그대로 두고 껍데기에 기술을 덧댄다고 시장이 반기진 않는다. 그러나 그 껍데기가 지독하게 매력적이면 얘기가 다르다. 짜릿한 경험만큼 뛰어난 상품은 없다. 진화하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것이 창의다. 업의 본질을 지키되 끊임없는 창의로 고객의 감각, 경험을 놀랍도록 높여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시대 장인정신이다.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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