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이미지 형성화. [픽셀스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402/200351_200356_633.jpg)
공상과학으로 시작해 보자. 태양계 너머 멀리 외계행성이 있다. 일찌감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고도의 문명을 꽃피웠다. 자신감이 넘쳤을까.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과학기술을 남용한 결과 지진해일, 기상이변, 대기오염, 자연파괴를 야기했다. 깨달음은 항상 늦는 것인가. 눈앞의 재앙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더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하고 우주 각 지역에 급히 탐사선을 보냈다.
스티븐 호킹의 불길한 예언이 적중했을까. 그들은 우리가 태양계 행성과 그 너머 성간 우주 탐사를 위해 보낸 우주선 보이저호를 찾아냈다. 보이저호에는 외계인을 만날 것에 대비하여 지구 위치와 역사, 주요 장소 사진, 생명체 등 정보를 담은 비디오, 레코드판이 들어있었다. 그들은 보이저호의 정보를 확인하고 단박에 지구로 날아왔다. 지구 생태와 환경 등 심층 탐사와 분석을 하였고, 그 결과를 보고서에 담아 외계행성 본부에 송신했다.
“지구 생명체는 옷이라는 이름의 화학물질을 몸에 걸치고 있다. 머리를 제외하고 몸 전체에 털이 빠진 것을 숨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세균 또는 바이러스 감염이 강력히 의심된다. 아침이면 지친 모습으로 거대하고 각진 콘크리트 건물에서 나온다. 흙이라고는 전혀 없는 딱딱한 아스팔트 또는 시멘트 블록 위를 걷는다. 바퀴가 달린 자그마한 상자에 들어가 이동하거나 지하철이라는 땅속으로 내려간다. 밤이 되면 그곳에서 나와 다시 콘크리트 건물로 돌아간다. 콘크리트, 아스팔트에선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데 기상이변, 대기오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모두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기기를 항상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안에 사람과 글자, 이미지를 가둬두고 학대하면서 즐기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서울이다. 결론적으로 이곳의 자연환경은 우리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하다. 지구 생명체는 심각한 정신질환과 세균감염에 시달리는 상태다. 타인을 속이고 괴롭힘을 일삼는다. 그들을 교화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더 이상의 접촉은 우리 종족에게 상상할 수 없는 위험과 파괴를 가져올 것이다. 한시라도 머물러선 안된다. 당장 복귀하겠다. 명령을 내려달라!”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외계의 누군가 보더라도 떳떳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답변하기는 쉽지 않다.
옛날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약육강식의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가장 강한 생명체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인간은 왜 사자처럼 강력한 근육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표범처럼 빨리 달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악어처럼 단단한 이빨과 등가죽을 갖지 못했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어 포기한 걸일까. 어쨌든 우리 조상들은 그들과 방향을 달리했다.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을 선택했고 손에 도구를 잡았다. 손도끼 등 도구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정교해졌고, 증기기관 같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지금은 인공지능 시대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기와 정보통신망을 연결해 디지털세상을 열고 있다.
디지털은 오프라인의 아날로그적 물질의 특성을 이진법을 이용해 0과 1의 각종 조합으로 변환하여 처리하는 과정과 결과를 말한다. 컴퓨터와 정보통신망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정보로 생산, 유통,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만질 수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필름을 인화하면 종이 형태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아날로그다. 이 사진을 스캔하여 파일로 만들어 보관할 수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하면 필름 인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촬영만으로 파일 형태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 보관할 수 있고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가족의 휴대폰, PC로 복제,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이 디지털이다.
우리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정보통신망과 컴퓨터 접속만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쇼핑을 하고, 금융 등 사업과 상거래를 하고, 정보를 검색하고, 게임을 하고, 사람을 만난다. 오프라인에서만 살던 인간은 디지털이라는 또 다른 영토를 찾아 분주하게 이주하고 있다. 디지털의 발명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가히 디지털 창세기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다. 디지털은 생성AI 등 인공지능 기술을 만나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디지털시대의 불쏘시개로서 디지털 혁명을 성공시킬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세기를 보자.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벌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험난한 인간의 역사를 써야 했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디지털 창세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세상에선 편리한 삶을 살 수 있다.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산업의 발전사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악용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인간의 생명과 신체를 해치고, 범죄에 악용하고, 산업과 시장을 교란하고, 자유와 권리 등 인간의 존엄을 해칠 수 있다. 법과 윤리로 단단히 무장하고 디지털시대를 개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이 만들 디지털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이고 놓치는 것이 없는지 논의해야 한다. 디지털 창세기에 기술과 인간, 국가와 정치, 사회와 문화, 산업과 경제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떻게 창조되고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진지하게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슬기로운 디지털 생활자의 길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