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블록체인밸리 DB]](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311/173705_149944_2623.jpg)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사법리스크의 덫이 좀처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발못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 번의 영장실질심사와 1년 6개월에 걸친 수감생활은 이재용 회장이 그간 겪었을 고통을 짐작케 한다. 2020년 9월 기소 이후 총 106번째 공판 중 94번이나 이 회장이 직접 출석했다. 출석률은 90%에 가까운 88.7%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 회장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달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검찰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날 이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만감이 교차한 듯 울먹이기도 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같이 법정에 선 그룹 임원들의 허물도 이 회장 본인 앞으로 돌렸을까. 그만큼 결백을 주장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날 최후 진술에서도 이재용 회장의 답답함이 오롯이 묻어났다. 이 회장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일들은 사전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재차 역설했다.
이 회장은 "오래 전부터 사업의 선택과 집중, 신사업, 신기술 투자, M&A(인수합병)를 통한 모자란 부분의 보완, 지배 구조 투명화 등을 통해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며 "이를 통해 회사의 존속과 성장을 지켜내고, 회사가 잘 되어 임직원과 주주, 고객, 협력회사 임직원,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사랑을 받는 것이 저의 목표였고 두 회사의 합병도 그런 흐름 속에서 추진됐던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불법적이지 않았다는 의미를 에둘러 강조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회장은 "저는 이 사건 합병 과정에서 저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며 "더욱이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분들께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은 맹세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과 법정에 선 그룹 임원들 모두 이 사건 합병이 두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두 회사의 합병이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단순화하라는 사회 전반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다른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든가, 다른 주주들을 속인다든가 하는 그런 의도가 결단코 없었다고 재차 항변했다.
이어 이 회장은 "삼성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며 "부디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에 재판부는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며 내년 1월 26일 오후 2시를 선고기일로 잡았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1심 선고 후에도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완전히 벗어날리 만무하다. 검찰의 예상보다 센 구형에 어느 쪽이든 항소를 할 가능성이 커졌고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 덫도 더 꼬이게 생겼다. 요즘같이 글로벌 정세가 요동치고 엄중한 한국 경제 상황에서 말이다.
현재 국제 정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형국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전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등 국제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국내 분위기도 마냥 좋지 만은 않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정치권도 불안불안하다. 여기에 더해 AI(인공지능)이나 로봇 등 신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격변기에 한순간 멈칫하다간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그간 행보에서 이 회장의 진정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이사회 중심의 투명 경영이다. 선대회장인 고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14년 5월 10일 쓰러진 후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부터 이어진 흐름이다. 지난 2016년 10월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외이사를 영입하겠다고 밝힌 뒤 지난 2018년 이사회에서도 이사회 중심의 경영에 힘을 실어줬다. 이 회장의 공언대로 당시 사외이사 구성을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여성, 반도체 전문가 등으로 내세우면서 경영 투명성을 끌어올렸다.
회장 취임 1주년을 맞은 지난달 27일에는 이사회 중심에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는 조치를 가속화 했다. 이 회장의 의지를 반영해 '선임(先任)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해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 강화에 더 고삐를 죘다. 삼성이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것은 거버넌스 체제를 재편해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선임사외이사 제도는 대표이사 또는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을 경우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선임사외이사를 뽑아 적절한 균형과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의 굴레를 벗기 위해 이 회장은 그 누구보다 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구형은 세게 나왔다. 삼성 입장에서는 이 회장의 내년 선고까지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에 다시 빠져든 형국이다. 미래 준비도 부족할 판에 항소심에 상고심까지 긴긴 사법리스크의 덫이 갑갑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