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소연 작가
그림 : 이소연 작가

어린 시절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보면 몹시 두려워 떨었다. 무서움은 나이가 들면서 느끼지 못할 만큼 줄어들었다. 왜일까. 

괴물은 일반적으로 흉측하거나 끔찍한 외양을 가지고 있다.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 사회에 통용되는 법과 도덕을 따르지 않는다. 막강한 힘이나 속임수를 써서 인간을 괴롭힌다. 

인간 문명이 고도로 발전했다. 과학기술의 잣대를 들이대면 괴물을 인정하기 어렵다. 괴물은 사라진 걸까. 디지털시대에도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범죄와 사건이 경쟁하듯 일어난다.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괴물도 진화한 것이 아닐까.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우리 몸과 마음속에 숨어든 것이 아닐까. 때를 기다리다가 우리 몸과 마음이 나약해지면 악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 삶은 몸과 마음속에 깃든 괴물을 다스리고 바깥에 드러내지 않게 억누르는 과정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영혼이 순수하다. 괴물은 그 몸과 마음속에 감히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괴물을 몸과 마음이 아닌 바깥에서 보는 것이 아닐까. 

폭풍우가 크게 치던 어느 밤,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고 나가려고 하자. 아이들은 겁이 난다며 엄마와 같이 자겠다고 우긴다. 아내가 말했다. “너희들은 다 컸잖니? 이젠 혼자 자야지. 엄마는 아빠와 자야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은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아빠는 나보다 더 겁쟁이야. 세상에서 제일 겁쟁이야!” 

한번은 공휴일이어서 내가 아이들을 재웠다. 헌이는 괴물 이야기, 연이는 공룡 티라노 사우르스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절충해서 티라노 사우르스를 닮은 괴물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괴물이 우리 아파트로 7살, 5살 먹은 아이들을 잡아먹으러 오는 이야기다. 여러분도 들어보시라. 

자동차를 타고 온 괴물은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는데, 바로 옆에 우리 자동차가 있었다. 괴물이 자동차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헌이 크레용과 연이 바비인형이 있었다. “이놈들이 7살, 5살이구나!” 하면서 괴물은 우리 자동차를 먹어버렸다. 그리고 자동차에 적힌 아파트 호수를 보고 헌이와 연이를 잡아먹으러 올라오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는 큰 거울이 벽에 걸려있다. 괴물은 거울에서 자기와 똑같이 생긴 괴물을 보고 놀랐는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거울을 부셔버렸다. 거울이 부서지자 깨진 거울조각마다 많은 괴물이 보였다. 괴물은 깜짝 놀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린 층에서 문을 열었더니 계단이 있었다. 괴물은 계단을 타고 올라와 우리 집 앞에 왔다. 

이 대목에서 연이가 “물 먹을래”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솔직하게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괴물이 7살짜리 아이만 잡아먹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하고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연이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우리 집 앞에 선 괴물은 초인종을 눌렀다. 엄마가 나가 “누구세요?”하고 물었다. 괴물이 말한다. “엄마 말을 듣지 않는 7살 아이를 잡아먹으러 왔다. 빨리 문 열어라. 열지 않으면 문을 부수겠다!” 엄마가 “말썽꾸러기를 잡아먹으러 오셨군요. 어서 오세요.” 반기며 문을 열었다. 괴물이 뛰어들며 다짜고짜 헌이에게 묻는다. 이 대목부터는 헌이가 자신의 대사를 만들도록 했다. 

괴물 : “네가 7살이냐?” 
헌이 : 아닌데요. 저는 8살인데요. 
괴물 : 그럼 7살 아이는 어디 있느냐?.
헌이 : 한 층 아래에 살아요. 

괴물은 아래층에 내려가 초인종을 누르고 그 집 아줌마와 말했다. 

괴물 : 여기 7살 아이가 살지?
아래층 아줌마 : 우리는 아이가 없어요. 위층에 맨날 시끄럽게 꿍꽝거리는 아이가 있는데, 7살이라던데요. 
괴물 : 아니. 아까 그놈이 거짓말을 했구나. 용서할 수 없다. 어서 가서 잡아먹어야지. 

다시 위층에 올라온 괴물이 헌이를 찾는다. 

괴물 : 이 거짓말쟁이. 어디 있느냐? 당장 잡아먹겠다.
헌이 : 나는 아이라서 맛이 없어요. 엄마가 더 맛있어요.
괴물 : 이 불효막심한 놈. 엄마 핑계를 대다니. (입을 크게 벌려 헌이 얼굴에 들이대며) 당장 잡아먹겠다. 
헌이 : 날 잡아먹으면 엄마가 슬퍼요. 속상해 해요.
엄마 : 난 안 슬픈데.
헌이 : (울 듯 웃는 듯) 아빠. 나 그만 잘래.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우리엄마 착한마음 갖게 해주세요>(홍익출판미디어그룹) 중에서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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