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소연 작가
그림 : 이소연 작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자. 줄리엣의 아버지인 캐플릿 백작이 딸을 시집보내며 노래 ‘딸이 있다는 건’(Avoir Une Fille)을 부른다. 딸을 낳고 기르던 즐거웠던 날들을 회상한다. 끔찍하게 아끼는 딸을 한 순간에 누군가에게 보내야하는 억울함과 탄식을 절절하게 드러낸다. 신에게 얼마나 중한 죄를 지었기에 딸을 주고 다시 빼앗아 가느냐며 원망한다. 요즘은 옛날과 같지 않지만 아버지가 딸에 대해 가지는 마음만은 그 때와 다르지 않으리라.  

오래전 일이다. 일에 지쳐 퇴근한 어느 날 연이가 나를 보고 회사생활이 힘든지 물었다. 그렇다고 말했더니, 아빠 회사생활보다 자기 학교생활이 더 힘들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다. 회사 생활이 당연히 힘들다고 했다. 아침 일찍 나가 회의하고 서류 만들고 협상하고 밤늦게 돌아오니까. 그랬더니 연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한다. 

“아빠는 돈이라도 받잖아. 회식도 하고. 근데 나는 돈 한 푼 못 받고 어려운 문제도 풀어야 돼. 용돈도 없어서 매점도 못가고. 시험 못 치면 엄마가 가만히 있지도 않고!” 

듣고 보니 그렇다.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까. 한번은 연이가 엄마에게 나쁜 말을 했다가 꾸중을 들었다. 엄마가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를 열 번 반복하게 했다. 잘 들리지도 않게 중얼거리다가 몇 번 다그치자 엉엉 울어버린다. 그래도 잘못했다는 소리를 안 한다. 결국, 회초리를 들었다. 그랬더니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를 마지못해 반복한다. 모기 소리만한 크기로. 

나는 그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재미있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연이가 열 번을 다하자, 아내가 “방에 들어가서 아빠한테 책 읽어달라고 해!” 했다. 나는 오랜만에 연이에게 책을 읽어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그것도 잠시 연이가 울먹이면서 말한다. “나는 엄마가 책 읽어주면 좋겠어‘” 하며 엄마한테 안긴다. 조금 전까지 꾸중하던 그 엄마한테 말이다. 

난 아빠로서 위로해 주고 책을 읽어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연이의 탁월한 정치 감각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니.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우리엄마 착한마음 갖게 해주세요>(홍익출판미디어그룹) 중에서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