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나라 시인 주경여가 지은 ‘장수부에게 바친다’(閨意獻張水部 규의헌장수부)라는 시를 보자.
洞房昨夜停紅燭(동방작야정홍촉) 신혼 밤을 지새우고 붉은 등불 꺼지더니/
待曉堂前拜舅姑(대효당전배구고) 새벽을 보낸 뒤에 시부모님을 기다리네/
妝罷低聲問夫婿(장파저성문부서) 화장을 끝내고 신랑에게 살짝 묻기를/
畫眉深淺入時無(화미심천입시무) 그린 눈썹이 어떨까요, 예쁘게 보실까요?
제목에 나오는 ‘장수부’는 주경여의 재주를 알아본 유명한 시인이자 벼슬아치 ‘장적’이다. 주경여는 왜 이런 시를 지어 장적에게 주었을까. 신혼 첫날 화촉동방을 밝힌 새색시의 애틋한 마음과 시부모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담은 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과거시험을 앞둔 주경여가 자신이 공부한 실력이면 합격할 정도인지 먼저 벼슬길에 나선 장적에게 시를 빌려 묻고 있다. 주경여는 우여곡절 끝에 시험에 합격했지만 관료로서 성공하지는 못했다. 시는 아름답고 재치가 있지만 시가 그의 관료로서의 능력을 담보해주진 않았다.
2024년 정월, 여당과 야당이 상대방을 쏘아붙이는 것이 예년 수준을 훨씬 넘어 무서울 정도다. 같은 당에서도 뜻을 달리하거나 욕심이 다른 사람들이 떨어져 나와 따로 살림을 차린다. 남의 집으로 거리낌 없이 거처를 옮기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 달력을 몇 장만 뒤로 넘기면 국회의원 선거다. 예비 후보 등록을 마친 사람은 매서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새벽부터 거리를 나서 마치 ‘눈썹을 예쁘게 그린 신부’처럼 시민들과 눈을 맞추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까. 항상 고민이다. 고민이 깊다 못해 투표를 포기할까도 싶다. 그래선 안된다. 나라가 어렵다. 그 전에 내 삶이 더 힘들고 빡빡하다. 반드시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서 정해준 후보라고 고민 없이 찍어선 안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 생각을 정책으로 어떻게 펼치려고 하는지 살피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과 이미 ‘화촉동방을 밝힌 신부’라고 해도 앞으로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갈 요량인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기까지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둘째, ‘눈썹을 그리지 않았던 때의 모습’을 찾아 읽어내야 한다. 선거철엔 국민과 지역구민에게 좋은 말만 하기 마련이다. 가식적인 모습에 속아선 안된다. 디지털시대다. 인터넷을 뒤지면 그가 했던 말, 행동이 모두 나온다. 그 중엔 억울한 모함도 있고 거짓 선행도 있다.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셋째, 간판에 적힌 학력, 경력과 배경, 경험, 인맥에 의존하는 사람을 걸러내야 한다. 주경여는 시인으로 유명한 장적을 이용했다. 장적은 주경여의 시가 재미있고 재치가 있다며 주위 관료들에게 소개했을 것이다. 주경여의 과거 합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최근 수십 년의 정치, 경제 상황을 보자. 화려한 학력, 경력, 인맥을 가진 여야의 그 우수한 분들이 이뤄놓은 것이 무엇인가. 별로 없다. 황당해도 좋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가진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
넷째, 언론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된다. 언론은 공적 역할을 한다지만 주식회사다. 기본적으로 영리적인 목적을 가진 법인이란 말이다. 온라인 동영상 매체에서 쏟아내는 극단적 정치성향의 목소리도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알고리즘이 그런 동영상만 추천하면 내가 편향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항상 균형감각을 가지고 듣고 고민해야 한다.
다섯째,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하나일 필요도 없다. 정책에 따라 다른 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어떤 선거에선 여당 후보를 뽑을 수 있고 다른 선거에선 야당 후보를 뽑을 수 있다. 특정 정당에 매몰되던 시대는 지났다.
여섯째, 내가 개인적 이익이나 사욕을 위해 당선되어선 안 될 후보를 지지하거나 그를 위해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선거의 목적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 최근 외국의 어느 마라톤 경기에서 1위로 달리는 선수가 결승선을 지난 것으로 잘못 알고 속도를 늦추었다. 그 뒤를 따르던 2위 선수가 그것을 보더니 1위 선수의 뒤를 밀어 자신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게 했다. 스포츠 정신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이 마라톤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선거도 그렇다. 나의 이익보다 선거의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미래가 일관되게 요구하는 사항이 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것을 밀어야 한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한 시대의 과학기술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기존 과학기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다수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결코 과학기술에 관한 진리 발견 그 자체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수천 년을 지탱해온 천동설은 그 당시 천문학의 주류 핵심이론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빛이 입자라는 견해는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이론으로 대체되었다. 1600년대 후반 아이작 뉴튼의 만유인력으로 대표되는 고전역학은 1800년대 후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오기까지 과학계를 지배했다. 1900년대 초반 닐스 보어에 의해 시작된 양자역학의 최대 도전은 아인슈타인의 반대였다. 결국 과학계도 옛 학자들이 죽어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새로운 이론이 옛 이론을 제치고 주류가 될 수 있었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옛 질서와 가치에 매몰된 노회한 정치인들이 떠나야 새로운 정치 가치와 이론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그렇다고 노회한 정치인더러 완전히 손을 놓고 뒷방 노인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도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신진 세력의 정치에 대하여 비판과 견제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 아인슈타인의 끊임없는 의문 제기와 비판이 있었기에 닐스 보어 등이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고, 오늘날 양자역학이 주류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후보를 뽑아놓고 아무렇지 않은 양 여의도 국회의원들을 폄하하고 비난한다. 그들을 상대로 건전한 비판을 할 순 있다. 그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들을 뽑은 우리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냉철하게 그들의 인품과 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하면 그들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 선거철만 속이고 넘어가면 되는 사람들로 우리를 깔볼 수 없다. 그것만이 대한민국 정치는 물론 우리 자신과 미래를 지키고 살리는 길이다. 그것만이 ‘일부러 그린 눈썹’이 아니라 마음속에 따뜻함과 실력을 보고 며느리를 뽑는 길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