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길을 가려면 자동차는 주유소를 들러야 한다. 사람도 살아가려면 규칙적으로 삼시 세끼 밥을 먹어야 한다. 그것뿐일까. 현대사회의 지친 삶에는 언제나 적절한 위안이 필요하다.
헌이가 요즘 너무 착해졌다. 눈에 띄지 않아 찾아보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신발을 가지런히 한다. 연이가 어지럽힌 것까지 치운다. 일주일 동안 헌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아내가 장난감 핸드폰을 사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연이에게 사준 장난감 핸드폰이 자기도 갖고 싶었나 보다. 아침밥을 먹다가도 “이불을 정리해야지”하며 가기도 한다.
어느 날 아파트 상가를 지니다가 문구점을 발견하고 종이 딱지를 사달라고 조른다. 옥신각신한 끝에 딱지를 사는 대신에 핸드폰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하면, “엄마가 딱지를 사줬으니까 당연히 해야지” 한다. 거의 틀리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가 딱지를 사줘서 집중해서 공부했어. 잘했지?” 한다.
연이는 고집이 강해서 사달라는 것을 안 사주면 바닥에 드러눕고 큰소리로 울고 하는데, 아내가 어릴 때 자기 모습 같아서 그냥 사주고 만단다. 그런데 헌이는 두 세번 안된다고 거절하면 중얼거리다가 포기한다. 한번은 헌이가 장난감가게를 지나다가 자동차인지 뭔지를 사달라고 했는데 아내가 비싸서 살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힘들어서 안된다고.
헌이는 그때부터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거 비싼 거야 아니야?”라고 먼저 묻는다. 그걸 왜 묻느냐고 하면, 사고 싶은 게 아니고 그냥 비싼지 아닌지만 알고 싶다고 한다. 비싸다고 하면 다른 것을 집고 “이거는?” 하고 되묻곤 한다.
헌이가 어느 아침에 일어나더니 내게 와서 “아빠 힘내세요!”라고 귀여운 목소리로 웃으며 말하곤 제 방으로 간다. 아빠가 힘들다는 아내 얘기가 마음에 걸렸나보다. 그날 연료를 가득 넣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자동차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내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일이다. 형편이 좋지 않던 시절이다. 아버지를 따라 고깃집에 갔다. 불고기를 조금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주인이 퉁명스럽게 한소리 했다. “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하시네요” 고기를 조금 더 주문하란 이야기다. 아버지가 웃으며 말하셨다. “걱정 마시오. 고깃값도 내는 둥 마는 둥 할 테니.....” 그때 아버지가 굉장히 재미있는 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온 그리 멀지 않았던 날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지막 길이 많이 힘드셨다. 옛 세대가 거의 그렇듯 아버지는 항상 어려웠고 나도 다정다감하지 못했다. 자식은 살아오면서 아버지를 자주 원망했지만 아버지는 자식을 원망하지 않았다. 고생 많으셨고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다. 평생 드리지 못한 말을 여기에 쓴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우리엄마 착한마음 갖게 해주세요>(홍익출판미디어그룹) 중에서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