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만명 파업 동참 예고 일단 빗나가...3년 전 2만명 기록은 넘겨 '성공적'
영업점별로 소수 인원 파업, 나머지는 정상영업에 힘 싣는 기류 강해
광화문 동화면세점 일대에서 대로를 따라 서울시의회 부분까지...구름처럼 집결

광화문 일대 금융노조 집회 장면 [사진=임혜현 기자]
광화문 일대 금융노조 집회 장면 [사진=임혜현 기자]
26일 금융노조 총파업 집회 인원은 광화문에서부터 길을 따라 멀리 시청역 부근 서울시의회까지 자리를 차지했다. [사진=임혜현 기자]
26일 금융노조 총파업 집회 인원은 광화문에서부터 길을 따라 멀리 시청역 부근 서울시의회까지 자리를 차지했다. [사진=임혜현 기자]

2004년7월 시작돼 2011년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 '주5일제'가 14년 만에 0.5일 줄어든 4.5일제로 전환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주5일제 도입 당시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란 말도 안되는 전망은 10여년 지난 지금 세간에 오르지도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억지에 그쳤다는게 입증됐다. 이런 가운데 은행권 노동자를 중심으로 또 다시 노동환경을 변화하려는 시도가 일고 있다. 10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경영계는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란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른바 신의 직장에서 일하는 은행원들이 거리로 모였다. 이들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은행권 노동조합이 선봉에 선다는 의지다. 이들이 내건 단축 시간은 일주일에 0.5일, 즉 4시간 줄여보단거다. 은행권 노조발 4.5일제가 대한민국 노동 여건을 바꾸는 신호탄이 될 지 주목된다.

2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가 총파업 집회를 연 가운데, 시민들이 파업 취지 중 하나인 주 4.5일제 시행 문제에 얼마나 동의하는가가 대한민국 노동 여건 변화를 이끌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금융노조는 이날 집회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하면서 일대 교통 통제가 이뤄졌다. 시내 중심가에서 펼쳐지는 속칭 '귀족 노조'의 집회, 거기에 금융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미 이달 초부터 비상한 여론의 관심이 모아졌다.

무엇보다 임금 인상 등 노조 집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당사자들 외엔 별로 관심 없는 이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주 5일제 근무체계를 향후 주 4.5일제로 바꾸자는 주장을 내건 만큼 사람들로서는 100% 무심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날 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평소 지키고 있던 사무실과 영업점의 자리를 비운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광화문역(5호선) 동화면세점에서 시청역(1,2호선) 앞 서울시의회 너머까지 길게 장사진을 펼쳤다. 

길게 교통통제가 이어지면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서  혹은 평소 대비 다소 느린 차 속도로 이동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접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번화가를 오가는 상당수 시민들의 발과 눈을 묶는 효과가 나중에 '추석 밥상머리 민심' 형성과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도로 정체를 유발한 금융노조 시위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임혜현 기자]
외국인 관광객들이 도로 정체를 유발한 금융노조 시위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임혜현 기자]

외국인 관광투어 버스 등에서도 이들의 집회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 일은 '지프 모자'가 다 했네...급상경해 자리 메운 지방은행 노조원들 눈길

당초 계획된 시작 시점인 오전 11시를 넘긴 시점. 이때까지도 아직 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예열'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금융노조는 당초 8만명 파업 참여를 추산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달성이 어렵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11시 30분이 가까워 오면서 각 지부별로 세를 과시하고 늦게 개별 도착한 이들도 휴대전화 등으로 일행을 찾으면서 자리를 잡아 집회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참석 노조원들은 동료들과 대열을 정비하고 물품을 나누면서 집회 정당성을 시내 한복판에서 외치기 위한 준비를 끝냈다. 신한은행 지부처럼 아예 금일 파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세운 경우도 있긴 하나, 대부분의 각 은행 및 금융기관별로 보면 약 1000명에서 적게는 50명선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방은행들의 활약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급히 준비해 나눠쓴 듯, 미처 상표도 떼지 못한 모자와 손팻말 등으로 무장하고 광화문~시청 일대 도로 위에 도열했다. 'Geep(지프)' 상표와 아직 옆에 붙어있는 가격 라벨 등이 선연한 복장 상태의 노조는 일단 iM은행(구 대구은행), 그리고 BNK부산은행, JB전북은행 등 소속이었다. 

이에 따라 QR코드 집계를 모두 합산하면 나올 인원 수에 시선이 모아진다. 3년 전 2만명의 총파업 참여 규모는 일단 넘겼다. 금융노조 측은 이날 2만2000여명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라벨도 채 떼지 못하고...급히 시위 현장에 나온 지방은행 노조원들. [사진=임혜현 기자]
라벨도 채 떼지 못하고...급히 시위 현장에 나온 지방은행 노조원들. [사진=임혜현 기자]

사측 집요한 노동 가중=주 4.5일제 당위성...금 가는 '귀족 노조 프레임' 

금융노조는 ▲ 주 4.5일제 전면 도입 ▲ 임금 5% 인상(3.9%로 수정 제안) ▲ 신규채용 확대 ▲ 정년 연장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노조의 이 같은 요구에 사측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 사실상 주 4.5일제는 물론 요구 조건 전부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 25일, 금융노조는 예정일인 26일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장 치열한 핵심 논제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 영업점 근무시간을 대폭 조정하는 주 4.5일제로의 전환 주장이다. 이번에 나온 금융노조의 주장은 월~목요일까지는 오후 4시30분까지로 근무를 늘리는 대신 금요일은 오전까지만 일하겠다는 파격적인 구상이다. 근무시간을 '헤쳐모여'한다는 데 방점을 찍을 수도 있지만, 일선 점포에서 주로 업무를 보는 고령층 등의 불편 우려를 겹쳐 보면 이들의 요구는 일단 파격적이다.

다만 금융노조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간 가중돼 오기만 한 노동에 오히려 주 4.5일제로의 전환과 삶의 질 끌어올리기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금융노조는 주 4.5일제 요구에 대해 "지난 몇년간 은행들이 효율화를 내세워 765개 점포를 닫고 7000명을 웃도는 인력을 줄인 탓에 남은 노동자들의 부담은 커졌고, 고객 불편은 심화됐다"고 우여했다. 아울러 "현장에선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 됐다"고 '쉼표'를 찍어야 할 배경을 설명했다.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은 총파업 집회에서 "우리는 노동만 하러 태어난게 아니라 행복하러 태어났다"면서 "저출생·지방 소멸 등 복합 위기 상황에서 인생을 숙제처럼 살아야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이 나라에 무엇을 기대하겠느냐"고 우려했다.

[사진=임혜현 기자]
[사진=임혜현 기자]

금요일 파업, 영업점 혼선 없어...역설적으로 4.5일제 가동 가능성 부각

금요일이었던 이날 시중 영업점들은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직원들을 동원, 평소 업무를 진행했다. 결국 고참 직원 아닌 지점별 한두명 선에서 타협적으로 참석 몰아주기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반대로 보면, 시사점도 있다. 이번에 인력을 소폭 줄인 상황에서 주4.5일제 등 근로조건 변화를 시도한다고 할 때, 초장기적으로는 아직 어떨지 몰라도 현재 인력 구조에서 방어가 가능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금융노조는 채용 확대를 통해 사회적 기여를 다하라는 요구도 하고 있어, 논리적 모순 없이 사회 현안을 선도하겠다는 이들의 고심이 갖는 순수성은 일단 인정받는 분위기다.

노조 집행부 간부들을 제외하면 금융회사들의 젊은 남녀 직원들 위주로 꾸려진 까닭에 행사는 밝은 분위기로 진행될 수 있었다. 

금융노조 조합원들은 신해철 '그대에게', 케이팝데몬헌터스 '골든' 등 음악에 따라 "주 4.5일제 쟁취", "실질임금 인상" 등의 구호를 외치며 축제처럼 행사를 즐겼다.

시민들이 다소 낯선 주 4.5일제 주장을 일부 보수적 시각의 경제지들이 제공해 온 렌즈를 벗고 있는 그대로 대면한 것은 사실상 올해를 통틀어도 이날이 첫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직원들 위주로 상당한 세를 과시한 이날 분위기는 득실면에서 금융노조 지도부에 나쁘지 않는 성적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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