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유전 가능성 제기한 美액트지오
작년 발표 당시에도 신뢰성 논란
울릉분지 ‘마귀상어’ 평가도 따내
1인 부실 업체에 용역 왜?…사실상 특혜 의혹
![미국의 심해 기술평가 업체 '액트지오(Act-Geo)'의 고문 비토르 아브레우(Vitor Abreu) 박사. [유튜브 갈무리]](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2/220056_225612_165.jpg)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최근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습니다."
지난해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예정되지 않았던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전격적으로 개최하며 "국민 여러분께 이 같은 사실을 보고드리고자 한다"며 예고 없이 TV 화면에 등장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며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고, 내년 상반기까지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강조한 바 있다.
발표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는 “먼저 대왕고래 보고를 받았는데 가슴이 떨렸었다”며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동공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울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며 “최대 매장 가능성으로 보면 140억 배럴 정도까지도 가능성이 있다”며 “동해 석유·가스전의 매장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추켜세운 바 있다.
‘대왕고래‘ 유망구조(석유·가스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구조)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온 국민을 들뜨게 했던 '산유국의 꿈'이 약 8개월만인 지난 6일 산산조각 났다. 동해 심해 가스전 유망구조인 '대왕고래'에서 처음 진행된 탐사시추 결과, 가스 징후가 일부 포착됐지만 경제성 있는 가스전으로 개발할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동해 심해 ‘대왕고래’ 유망구조의 시추 지점에 정박해 정확한 시추 위치를 조정하고 있는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의 모습. [석유공사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2/220056_225613_1627.jpg)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가스 징후가 잠정적으로 일부 있었음을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포화도 수치가 경제적으로 생산 광구로 전환하거나 추가 탐사시추 할 만큼의 수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 가스 포화도로는 경제성 있는 가스전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대왕고래에 대한 추가 탐사시추는 진행하지 않기로 하고, 시추공을 뽑고 현장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론이 나오면서 지난해 윤 대통령이 직접 탐사시추 계획을 발표할 당시 예상 성과를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아울러 정부가 대왕고래 유망구조 가능성을 제기한 미국 업체 '액트지오(ACT-GEO)'에 40억원의 용역비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7일 에너지시추 업계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대왕고래에서 수집한 시료와 데이터 분석을 맡길 기관을 선정하기 위해 글로벌 5개 업체를 대상으로 지명경쟁 입찰을 실시했다. 이 중 미국의 지질구조 분석 업체인 코어랩과는 이달 내 선정을 목표로 우선협상을 하고 있다. 계약금은 100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최종 선정된 업체에 대왕고래에서 나온 1700개 이상의 시료 분석을 맡겨 이를 후속 탐사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데이터 분석 업체가 아닌 액트지오는 이번 입찰 대상에서 빠졌다.
미국의 심해 기술평가 업체 '액트지오'는 앞서 한국석유공사 등에 낸 용역 보고서를 통해 경북 포항시 영일만 일대 140억 배럴이 넘는 가스·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최근 액트지오는 이 외에 51억 배럴 이상의 추가 가스·석유가 울릉분지(마귀상어)에 묻혀 있을 가능성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석유공사가 액트지오에 용역비로 지불한 금액은 4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액트지오의 이 같은 평가를 기점으로 시작된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사실상 실패하면서 액트지오의 신뢰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또다시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발표 당시부터 액트지오는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단독으로 운영하는 사실상 1인 기업이라는 점 등이 문제로 제기된 바 있다. 사무실이 미국 텍사스주의 한 가정집으로 되어 있는 데다, 현지에서 세금까지 체납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부실 업체’ 논란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6월 7일 비토르 아브레우(Vitor Abreu) 액트지오 고문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우리가 판별을 했지만 시추를 하지 않으면 그 리스크를 전부 다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고, 지금 남아 있는 마지막 방법은 시추"라며 "다만 해당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경제성이 있는 탄화수소가 누적돼 있다는 사실은 찾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는 리스크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이미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울러 그는 "오해하면 안될 부분이 있는데 20%의 성공 가능성은 즉, 80%의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라며 "5개의 유망구조를 대상으로 시추한다면 1개의 구조에서 석유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실패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대왕고래에 이어 마귀상어까지 액트지오가 유망성 평가 용역을 따낸 과정도 수상한 점이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혼자 운영하는 부실 업체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주장이다. 액트지오의 보고서 때문에 석유공사가 대왕고래 시추에 들인 예산은 무려 1000억원에 달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발표를 하고 있다. [KTV 캡처]](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2/220056_225615_1649.png)
한편, 환경시민단체들은 전날 정부의 발표에 앞서 동해 심해 가스전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두고 '처치 곤란한 사업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지난달 8일 기후솔루션은 정부가 추진 중인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가진 문제점들을 분석한 이슈 브리프 “시대착오적 ‘대왕고래 프로젝트’ 추진, 무엇을 놓치고 있나”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전 세계 가스와 석유 수요가 2050년까지 현재 대비 79% 감소할 전망이며, 국내 수요도 지속해서 하락함에 따라 대왕고래 사업이 처치 곤란한 사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가스팀 팀장은 “석유가스전 개발은 높은 비용과 기후환경 리스크, 글로벌 에너지 전환 추세와 괴리로 경제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석유가스 개발이 곧 에너지 안보라는 낡은 인식으로, 저무는 시장에 베팅하느라 미래를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