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신상 털기·정치 성향 의혹 제기하며 공정성 시비
우리법연구회 출신 겨냥 '좌편향' 프레임 씌우기 전략
법조계 "탄핵 인용 대비한 불복 명분 쌓기" 지적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의 일부 재판관에게 좌편향 프레임을 씌우며 '메신저 공격'을 노골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탄핵 불복을 위한 '빌드업'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헌법재판관 8명 가운데 3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아닌 '우리법재판소'"라고 비난했다. 권 위원장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친분, 이미선·정계선 재판관 가족이 윤 대통령 탄핵 추진 단체와 연관됐다는 의혹 등을 제기하며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모든 불공정 재판의 배후에는 민주당과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의 '정치·사법 카르텔'이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특정 성향 법조인들이 정치권과 결탁해 사법부를 좌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권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대학, 사법연수원 선후배 사이로 과거 이 대표의 소개팅을 주선해줄 만큼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여당 지도부의 이런 발언들은 헌재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논리적 비약과 사실 왜곡에 기반한 정치 공세라는 지적이다. 실제 문형배 권한대행과 이재명 대표의 친분설은 이미 허위 사실로 드러났으며 헌법재판관들 성향도 보수 3명, 중도 2명, 진보 3명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뉴스1]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뉴스1]

여당의 공세는 온라인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헌재 재판관 흔들기로 이어지고 있다. 헌재에 따르면 탄핵 소추안이 접수된 지난달 14일 이후 홈페이지 자유 게시판에는 47일 동안 120만건이 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가운데 문 대행을 겨냥한 글이 11만건을 넘었고 10만 2000건은 이미선 재판관, 4만 8000건은 정계선 재판관, 2만 7000건은 정정미 재판관을 언급한 글이었다. 이들 게시물에는 재판관 개인 신상을 공개하거나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등 도 넘은 내용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리를 개시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재판관 성향에 따른 편향성·공정성 시비를 일축해왔다. 지난 24일 정례 브리핑에서는 "헌법재판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며 "개인적 사정은 헌재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밝혔고, 14일에는 윤 대통령 측이 신청한 정계선 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 개인적 배경을 이유로 한 기피 신청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여권의 집요한 헌법재판관 흔들기가 탄핵 심판 불복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 재판관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지우면서 궁극적으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고 헌정 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헌재는 설 연휴 이후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다음 달 13일까지 네 차례 예정된 변론 기일에서 증인 7명을 불러 신문할 예정이며, 내달 6일 6차 변론기일부터는 심리를 오전 10시부터 종일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외부 압박이나 정치적 공세에 흔들리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심판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여당이 오히려 이를 흔드는 '민주주의의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헌재 흔들기를 중단하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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