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여사, LG家 전통 훼손하는 상속 소송 결자해지해야

2012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미수연에 모인 LG家. [LG 제공]
2012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미수연에 모인 LG家. [LG 제공]

"형제간과 종족 사이에는 서로 좋아할 뿐 따지지 마라."

LG그룹 창업자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경남 진주 지수면 승산리 생가 본당 우측 모춘당이라는 정자 기둥에 새겨진 글귀다. 구 창업주의 조부인 만회 구연호공의 유훈으로 LG가(家)의 형제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글귀다. 이를 금과옥조로 여긴 LG가는 장자 승계를 유지하면서도 단 한 차례 분쟁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계열분리를 통해 총수에 오른 조카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인화(人和)의 아이콘이었던 LG가 최근 불화(不和)의 이미지로 퇴색돼 가고 있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올해 3월이다.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등 두 딸과 함께 아들인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다. 5년 전 구본무 회장의 별세 후 이뤄진 재산 분할을 다시 하자는 주장이다. '법정 상속 비율인 '배우자 1.5대 자녀 1인당 1'로 재분할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소송은 아직 1심조차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선고가 예상된다지만 하반기로 넘어갈 가능성도 엿보인다. 원고인 김 여사 측이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올해 들어 비공개로 변론준비기일만 세 차례 열렸고, 내달 한 차례 더 예정돼 있다.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법원으로 하여금 민사사건이 접수된 지 5개월 이내에 종국판결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재판지연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그보다 4배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재판이 갈피도 잡지 못하는 동안에 대한민국 대표 기업 중 하나인 LG의 기업 이미지 훼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LG가 안팎에서는 역대 회장들의 뜻과 그룹의 승계 원칙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가문의 맏며느리 김 여사가 75년 무분쟁 기록을 스스로 깼다는 점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상속회복청구 소송의 제척기간(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 3년이 지나고도 뒤늦은 재산 분할을 주장하는 것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심지어 올해 5월 화담 회장의 6주기 제사를 두 곳에서 따로 지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김 여사 등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며 그룹과 집안을 망신시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LG그룹 홍보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정상국 전(前) 부사장이 지난 7월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일침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 전 부사장은 자신의 사회연계망서비스(SNS)에 "LG그룹 각사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퇴직한 최고 경영자나 임원들 중에는 심지어 '가족 상속 분쟁' 때문에 부끄럽고 화가 치민다는 분들도 제법 계신다"며 "돌아가신 화담(和談) 구본무 회장께서 작금의 이 지경을 보시면, 어떤 마음이 드실까"라고 현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LG를 거쳐간 수많은 임직원들의 피땀과 열정으로 이룬 '인화의 LG 브랜드'를 가족들끼리 상속 재산을 놓고서 돈 싸움이나 벌이다가 이렇게까지 망가뜨렸다"며 "명분도 없고 또 승산도 없는 '상속 재산 분할 소송'을 조속히 취하해서 마지막 품격을 지켜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영식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 총재.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 홈페이지 캡쳐]
김영식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 총재.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 홈페이지 캡쳐]

지난해 10월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상속 소송 첫 변론 기일에서는 구 회장에게 LG그룹의 경영 재산을 모두 승계한다는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유지가 담긴 메모가 있었고 이를 세 모녀도 확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범종 LG경영지원부문장 등에 따르면 구 회장 상속분이 100%라는 메모 내용을 전해 들은 김 여사는 ‘딸들에게도 지분을 나눠줄 것’, ‘(본인이) 지정하는 재단 등으로 기부처를 늘려 줄 것’ 등을 요청하며 합의서를 두 차례 수정했고, 그 모든 요청이 담기고 나서야 2018년 11월 최종 합의서에 날인했다.

법조계에서는 적법한 과정을 거쳐 상속재산분할에 관한 합의서가 작성된 데다가 제척기간을 넘겼다는 점에서 세 모녀의 승소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소송을 제기한 배경이다. 자산이 부족하기 때문은 결코 아닐 것이다. 세 모녀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지난해 기준 1조3000억원에 달한다.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LG그룹 경영권을 노린 소송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LG의 경영권을 노리는 누군가가 세 모녀의 소송을 부추겼다는 배후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배후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람은 구연경 대표의 남편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다. 김 여사나 구 대표 모두 상속분쟁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고 대외적으로도 경제활동을 한 경험이 거의 없는 데 반해 윤 대표는 자본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세 모녀 상속재산 소송 변호를 맡은 이정민 변호사가 윤 대표의 대여금 반환 소송까지 맡아 심증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특히 윤 대표는 서류를 위조해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하고 병역을 면탈했다는 의혹부터 불법적인 미국 시민권 취득 논란까지 의혹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123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텨 국세청과 1년 넘게 소송전을 벌이고, 최근에는 윤 대표 본인은 물론 아내인 구 대표까지 금융당국으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매수했다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통보되기도 했다. 사생활과 관련해서는 연예인 부인 금전 지원 의혹까지 나왔다. 윤 대표의 일탈이 많이 드러날수록 상속분쟁에서 김 여사 측은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 사례에서 보듯이 가족 간 경영권 다툼은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만 남긴다. 백번 양보해서 세 모녀 측이 일정 부분 승소를 하더라도 누구를 위한 승자인지 묻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다. 멈출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LG그룹이 미래 사업에 대한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김영식 여사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으로 꼬인 실타래를 한시라도 빨리 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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