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이미지. [픽셀스 제공]
공직자 이미지. [픽셀스 제공]

풍도는 중국 오대십국 시대에 활약한 관료다. 유명한 시를 남겼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후당, 후진, 후한, 후주와 거란의 요나라 등 5개 왕조, 황제 11명을 섬겼다. 당나라 말기 유주절도사 유수광 밑에서 관직을 시작했다. 이존욱이 유수광을 없애고 후당을 세울 때 재상에 올랐다. 석경당이 후당을 없애고 후진을 세울 때도 재상이 됐다. 후진이 요나라에 망하자 요나라 관료가 됐다. 유지원이 요나라를 쫓아내고 후한을 세울 때도 관직에 올랐다. 곽위가 후한을 없애고 후주를 세울 때 또 재상이 됐다.

전쟁은 끝없이 이어졌다. 백성의 삶은 궁핍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많은 왕조가 오늘 세워졌다 내일 무너졌다. 풍도는 왕조가 바뀌어도 항상 고위직에 있었고 백성의 칭송을 받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황제가 보기엔 간신이다. 간신은 충신보다 살아남기 싶다. 여느 간신과 달리 일도 잘한다. 꼭 필요한 사람이다. 관직 초기에 유수광의 전쟁을 반대해 처형위기를 맞았다. 그때부터 몸을 사리고 시류에 영합했다. 옛 왕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 왕조를 앞서 맞길 반복했다. 처신도 좋았다. 후진 시절 요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요나라 태종이 신하가 되라고 권했으나 거절해 황제의 신뢰를 얻었다.

후주 세종이 즉위하자마자 북한 유숭이 침략했다. 세종이 몸소 출전을 하려하자 황제가 다치면 안되니 다른 장군을 보내라며 막아섰다. 세종은 직접 출전해 대승을 거뒀는데 출전을 반대한 풍도를 오히려 중용했다. 백성이 보기엔 충신이다. 요나라가 침입해 백성을 죽이려하자 ‘부처도 백성을 구할 수 없지만 대왕만은 할 수 있다’며 요 태종을 구슬려 학살을 막았다. 관리들의 착취를 금지했고 곤궁한 백성에겐 베풀었다. 

그의 처신을 비난할 수 없다. 당시 왕조는 대부분 군사조직이 핵심이었다. 황제는 전쟁을 일삼고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 기존 관료들은 허례의식이 가득했고 실리 없이 명분만 세우다가 죽임을 당했다. 풍도는 달랐다. 황제와 충돌하지 않았고 실무능력이 좋았다. 뇌물을 받지 않았고 궁핍할 정도로 청렴했다. 자신의 안위만 지키지도 않았다. 백성이 위험에 처했을 땐 목숨을 걸고 나설 줄 알았다. 황제나 권력자의 행동이 국가를 잘못 이끌 때에는 불편하지 않게 성의를 다해 직언했다.   

21세기는 오대십국과 같은 전란의 시대가 아니다. 경제화와 민주화도 이뤄졌다. 공무원은 풍도에게 배울 것이 없는가. 있다.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불법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법령을 준수하고 청렴해야 한다. 법치행정의 틀을 벗어날 순 없지만 정권이 국민에게 약속한 사항을 실행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은 헌법적 요구이다. 정치인 흉내를 내선 안된다. 정권의 공약사항이 아니어도 국민을 위해 할 일은 해야 한다. 항상 공손하고 신중하며 진심을 다하고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상위 의사결정권자에게 의견을 낼 때는 국가, 국민과 그에게 도움 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과격한 언사나 행동을 피하고 분란을 조성하지 않아야 한다. 첨단 산업사회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했고 공무원도 박봉에 시달리지 않는다. 구조적 부패는 거의 없어졌다. 부당한 옛 규제를 걷어내고 새로운 산업을 진흥해야 한다. 복잡·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정의와 공정이 중요해지면서 갈등도 증가하고 있다. 국민이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을 막고 신속하게 해소해야 한다. 

풍도는 말년에 ‘장락노자서’(長樂老自敍)를 지어 자신을 ‘오래 즐긴 노인’이라 불렀다. 관직, 칭호 등 자랑거리를 기록했다. 뒷날 송나라 정치가 구양수는 풍도가 여러 왕조를 섬기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비난했다. 오대십국 시대는 백성보다 왕조가 중한 시절이다. 지금은 정권보다 국민이 중하다. 공무원은 정권, 여야의 끝없는 정쟁 속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풍도의 삶은 21세기 공직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디지털 생활자” 저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