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건강이 우선이냐, 시멘트공장 수익이 우선이냐?

필자가 살고 있는 충북 제천은 예부터 청풍명월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소문나 있다. 최근에도 한방치유-힐링-휴식의 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별한 주력상품이 없는 제천, 단양, 영월 등 인근 지역은 관광을 제1산업으로 하고 있는데, 제천은 지난해 10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이 지역이 안고 있는 ‘쓰레기 시멘트’의 걷잡을 수 없는 폐해 실상을 알고 나면 이 같은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한숨이 나온다.
인구 13만 명이 살고 있는 제천은 2023년 발표된 '살기 좋은 도시'(사회안전지수) 평가에서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184곳 중 182등의 낙제점을 받았다. 매년 600~700여 명의 인구가 줄어들고 그 중 상당수가 역귀향으로 제천을 떠나고 있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에만 300명의 인구가 줄어들었다. 제천시의 1인당 주민 소득(GRDP)은 2022년 기준, 전국 평균(4500만 원)의 절반 수준(26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충북 도내 11개 시군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누워 침뱉기식으로 이런 수치를 열거하는 것은 시멘트공장이 제천 경제에 얼마나 뒷받침되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거대한 시멘트공장들이 우리 고장을 에워싸고 각종 공해물질을 배출해 왔다. 제천시는 현재 반경 15km 이내에 6개의 거대 시멘트공장이 내뿜는 공해물질의 위험 속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시 오염 적색 경계 지역’이 되고 말았다. 더욱 위험한 것은 ‘쓰레기 시멘트’의 폐해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시멘트공장들은 쓰레기 처리 용량 증가를 위한 증설작업을 대부분 마친 상태라고 한다. 이는 곧바로 시멘트회사의 수익증가를 뜻하는 것이지만, 우리 고장의 대기오염 위험수위가 적색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상태로 몇 년간 쓰레기 처리량을 계속 늘려갈 경우, 우리 고장은 대기환경 뿐 아니라 토양 오염, 수질 오염으로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우리 고장의 이웃 중에 최근 들어 유독 호흡기나 순환기 질환, 암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결과일까? 환경부가 매년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1급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의 경우 충북 도내 발생 총량의 95% 이상을 제천-단양의 시멘트공장이 배출하고 있다. 우리 고장은 대한민국 전체면적의 10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전국 대기오염 발생 총량의 10분의 1을 생산해내고 있다. 즉, 다른 지역에 비해 10배 이상 대기 환경이 나쁘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전국의 국민을 향해 청정지역으로 관광 오셔서 힐링하고 치유하시라고 광고할 수 있겠는가?
주민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일보다 더한 가치와 덕목은 없다. 시멘트 회사들에게 ESG경영을 요구하는 것은 나무에서 생선 찾는 일이다. 더구나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위한 정부의 '2030-2050’정책이 실현되면 시멘트공장들은 수년 이내에 쓰레기 처리(현재 연간 1000만톤 가량 처리)를 몇 배 더 늘리게 된다. 아울러 최근 제천-단양 등 시멘트공장 주변 6개 지역 시장, 군수들이 추진 중인 '시멘트공장 쓰레기 반입세'가 입법화되면 우리 고장 공기는 현재보다 몇 배 더 악화 될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1급 발암물질 질소산화물(NOx)-미세먼지-초미세먼지와 함께 황산화물, 6가크롬, 수은, 라돈, 비소, 아크릴로나이트릴, 톨루엔, 나프탈린, 다이옥신 등 치명적인 공해물질도 몇 배 더 증가해 우리 고장의 대기를 뒤덮을 것이다. 이럴 경우, 주민 건강 악화는 물론이려니와 관광객 유치는커녕, 우리 고장 농산물까지 불매운동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지역주민이 잘 모르거나 무관심한 사이에 우리 고장은 돌이킬 수 없는 공해의 용광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시멘트공장의 설비 조건, 즉 질소산화물(NOx) 배출기준, 첨단 집진시설(SCR) 설치, 공장 굴뚝 원격감시체계(TMS) 기준, 각종 쓰레기 처리기준, 공장 인근 지역 주민 건강 보건이나 복지 정책 등에서 선진 외국과의 비교는 오히려 호사스러운 일이다. 국내 대기환경 오염 배출 산업군(제철-제련, 화력발전, 소각 업체 등)과의 비교에서도 시멘트공장들은 너무나 현격한 불평등 구조 속에 철저하게 방치되어 왔다.
우리나라 헌법 35조는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면서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시멘트공장 주변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 조항은 ‘빛 좋은 개살구’와 다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멘트공장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NOx) 등을 다량 배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중앙 정부나 지자체 등 관련 당국의 대처는 안이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국회의원, 시장, 지방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의 무사안일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환경부나 산자부 등은 국민과 국토를 우선하는 기관인지, 아니면 시멘트공장 편을 두둔하는 기관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골치거리인 거대한 쓰레기산 문제를 처리해주는 시멘트공장이니 그들에게 특혜나 은전을 베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사례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시멘트공장에 반입되는 쓰레기(폐기물)의 중금속과 열량 기준을 무시하고, 수집·운반업체나 파쇄업체와 물량 반입 계약을 하고, 그 물량 규모에 따라 처리비를 낮춰주거나 운반비 보전까지 해주는 어처구니 없는 특혜 사례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환경부가 반입폐기물의 발열량 기준을 현재의 4500kcal에서 고형연료 기준인 3500kcal로 낮춰달라는 시멘트업계의 주장을 수용 검토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러고도 환경부가 시멘트벨트 지역주민 건강을 걱정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시멘트공장의 수익추구에만 발맞추는 부처라 아니할 수 없다. 시멘트공해에 25시간 노출되어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며 살고 있는 우리 주민들 입장에서 이런 실태를 전해 들으면 한숨을 넘어 분노가 치솟는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0.3%에 불과한 시멘트산업이 배출하는 오염 물질은 국가 전체 양의 18%나 된다. 이런 후진국형 애물단지 산업을 위해 주민들의 건강이나 행복권을 언제까지 희생양 삼을 것인가.
/ 박남화 제천ㆍ송학환경사랑 대표
제천 시민참여에너지조합 이사장
한국시멘트대책위원회 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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