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을 물건으로 보지 않는 민법 개정안과 반려동물에 대한 강제집행을 금지하는 민사집행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 고양이를 가족처럼 키우는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 강제집행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고 하자. 지금은 개, 고양이도 물건이므로 주인과 떨어져 강제집행의 대상이 된다. 주인 허락 없이 누군가에게 팔려갈 수 있다. 법이 통과되면 개, 고양이는 물건이 아니고 강제집행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주인과 생이별하지 않아도 된다.
산업사회 고도화, 개인화 등 다양한 이유로 개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많이 달라졌다. 개는 더 이상 집을 지키지도 사냥을 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과 정서적 교감을 함으로써 가족의 지위까지 올랐다. 최근 특별법을 제정하여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고 식용으로 키우거나 먹는 것조차 금지했다. 옛날엔 ‘개’라는 표현을 욕설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무언가 굉장한 것을 뜻하는 비속어의 접두사로 사용한다. 개맛있다(굉장히 맛있다). 개강하다(굉장히 강하다). 등등
우리 집에도 말티즈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연이가 어릴 때 우연히 들어간 애견샵 윈도우에 있었다. 연이가 애견샵 복도에 누워 울며불며 시위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샀다. 강아지만 사주면 그 뒤로 생일선물, 세뱃돈, 크리스마스선물을 일체 요구하지 않겠다고 자진하여 맹세했다.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강아지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시켜주고 때가 되면 사료를 먹인다. 옛날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누군가 미국을 방문했는데 미국인의 삶이 불쌍하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인이 개 줄에 끌려 다니며 개똥이나 치우고 있으니 개의 노예라는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직장인의 신세도 개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다. 내가 만든 개뿔, 개털, 개뼈다귀의 용어 사용법도 있다. 개뿔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전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개털은 존재하지만 수많은 털 속에 가려있고 가벼운 바람에도 이리저리 날리는 불쌍한 신세를 말한다. 개뼈다귀는 아무데도 쓸 곳이 없어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타낼 때 쓴다.
예를 들어 누가 연말에 과장 승진을 하냐고 물었을 때 승진연한 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전혀 가능성이 없으면 “이런 개뿔” 하면 된다. 승진연한이 되고 법령이나 회사 규정상 제한이 없는데 실력이 없어서 이리저리 눈치만 봐야 할 때는 “개털이야” 하면 된다. 외부나 다른 부서에서 옮겨와서 별 존재감 없던 사람이 뜻밖에 과장이 되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야?” 라고 한다. 제대로 알고 써 주시면 좋겠다.
하는 일없이 먹고 잠자고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면 나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강아지보단 내가 낫지. 밖에 나가고 싶어도 자기 의지로 나가지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과 사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보인 적도 많다. 어느 날인가 강아지를 보고 불쌍하다고 내가 한마디 했더니, 옆에 있던 연이가 조용히 한마디 한다.
“강아지 눈엔 맨날 힘들어하는 아빠가 더 불쌍할지도 몰라.”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우리엄마 착한마음 갖게 해주세요>(홍익출판미디어그룹) 중에서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