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상 환경자원순환업생존대책위원회 위원(고형연료제조사업자협동조합 이사장)
서유상 환경자원순환업생존대책위원회 위원(고형연료제조사업자협동조합 이사장)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1등 공신을 꼽으라면 당연 시멘트업계를 빼놓을 수 없다. 6.25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대한민국을 세계 13위 경제 강국으로 키워온 것은 “건설의 쌀”인 시멘트업계의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수도 서울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이 이제는 가히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시멘트업계의 공이 크다. 이로 인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반면, 대한민국 환경산업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열악한 상황 속에서 명멸을 거듭해 왔다. 그 와중에도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대한민국처럼 폐기물을 재활용(물질, 화학, 에너지 등)으로 촘촘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그 정도로 폐기물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혐오ㆍ기피시설이라는 낙인을 받으면서도 부단한 노력으로 이제는 외국에서도 기술력을 넘보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지극히 안정적인 물량 수급 구도를 가지고 있던 환경기초시설업계(일명 “자원순환업계”)가 붕괴위기를 맞고 있다. 자원순환업계의 생존 공식은 간단하다. 폐기물을 확보한 후, 그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물질, 화학, 에너지 등으로 변환시키는 업이다. 

지금 자원순환업계가 반입(Input)해야 할 폐기물이 없다고 난리다. 당연 자원순환(Output)도 위축되었다. 눈을 씻고 찾아보니 모든 폐기물, 모든 순환자원들을 실은 운반차량이 시멘트공장으로 줄을 서고 있는 것이다. 폐기물업에 관계되는 배출자, 사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시멘트공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심지어 정상적인 폐기물 재활용 제품을 만들던 업자들까지 시멘트공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조사해보았다. 시멘트업계는 탄소중립을 위해 비싼 유연탄을 폐기물로 대체한다고 한다. 폐기물 배출자들과 처리업자들도 저렴한 처리비에 손쉬운 재활용 방법으로 시멘트공장을 선택한다. 복잡한 재활용 공정을 거쳐 폐기물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간편하며 비용까지 절감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7개 시멘트 공장들은 앞다퉈 폐기물 영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결국 사달이 벌어졌다. 430개 환경기초시설업계와 7개 시멘트업체가 정면충돌했다. 서로가 서로의 업역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한다. 

시멘트업계는 법과 제도적으로 문제없는 폐기물의 유연탄 대체 사용을 왜 환경기초시설업계가 참견하느냐고 따진다. 환경기초시설업계는 제조업인 시멘트업계가 폐기물처리업계의 고유 영역을 무작위로 침범했다고 한다. 물론 각자의 입장과 주장은 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존폐를 넘나들 정도로 궁지에 몰린 환경기초시설업계는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다. 환경기초시설업계가 사달에 원인을 찾아보니 수십 년간 시멘트업계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방치해 놓은 것이 금번 사태의 원인이었다. 그렇다. 사고만 터지면 늘상 언급되는 인재(人災)인 것이다. 시쳇말로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냐"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환경기초시설업계는 법과 제도의 엄격한 테두리에서 환경업을 영위해오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시멘트업계는 이 법과 제도의 틀이 허술해도 너무 허술하게 적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잣대를 동일하게 적용해 주었더라면, 시멘트업계도 선진국에 버금가는 시설로 재탄생코자 스스로의 기준을 강화시켰더라면 오늘과 같은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양자 간의 갈등을 떠나서라도 시멘트업계가 지역주민,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냄새나는 것은 아무리 덮어도 감출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와 수준이 가히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고름이 피가 않되는 것이 사실인 만큼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이제는 시멘트업계도 백일하에 드러난 진실을, 짜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를 감내하기 싫다고 방치하면 화농만 커진다.

정부도 시멘트업계로 촉발된 사태를 더 이상 관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만큼, 시멘트 업계도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 물지 말란 법이 없듯”이 430개 중․소환경기초시설업계와 대기업인 7개 시멘트업계가 상생․균형 발전 할 수 있도록 한발 양보하고 한걸음 떨어져서 작금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다.

탄소중립 실현과 기간산업의 중요성만을 얘기하고 있기에는 최근의 사태가 녹록치 않다. 시멘트 제조 본연의 업을 영위하면서 폐기물 재활용업체로서의 기능을 병행하려면 법과 제도를 GDP 36,000불 선진국에 맞게 정비해서 스스로를 관리하려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환경기초시설업계와 국민들이 무작정 생때를 쓰는 것이 아닌만큼 느슨한 고무줄을 선진국 수준에 맞게 정확히 조여서 옷을 입고 릴레이를 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일등공신의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 것이다.

/ 서유상 환경자원순환업생존대책위원회 위원(고형연료제조사업자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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