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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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한국 미디어 환경은 변했다. 국내 OTT 서비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가 전통 유료방송 가입자 수를 추월하고,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 등 다양한 플랫폼들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서면서, 콘텐츠 생산·유통·소비 전반이 OTT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에 따라 방송사, 영화사 등 기존 주체들은 광고 시장과 시청자를 OTT에 빼앗겼다. 주요 프로그램의 시청률 10%는 드문 일이 되었고, 광고비는 디지털 플랫폼에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이 변화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토종 OTT 누적 적자가 심화되는 가운데, 국내 중소 제작사의 30%는 지난 2년간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플랫폼 간 콘텐츠 수급 경쟁이 심화되면서 매년 수십 편의 대작이 제작되지만, 비슷한 소재와 포맷에 몰리며 참신성과 실험정신은 줄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글로벌 대형 플랫폼이 국산 콘텐츠의 판권과 저작권을 독점하거나, 제작자에게 일방적 권리 양도를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 그 결과, 창작자의 권리와 보상 체계가 취약해지고, 일부 플랫폼과 투자자에게 수익이 편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소비자 측면의 우려도 크다. OTT 이용자의 66%가 자신의 시청 데이터 활용 방식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AI 추천 알고리즘이 정보 소비의 폭을 좁히고 취향의 고립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정보 접근성은 늘었지만 문화적 다양성과 데이터 주권, 알고리즘 투명성 등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이제 우리는 경쟁을 넘어,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OTT와 전통 미디어, 창작자와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국내외 플랫폼에 모두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되, 공정한 경쟁과 다양성 증진을 목표로 해야 한다. 프랑스는 SMAD법령을 통해 글로벌 OTT에 연 매출 20%~25%를 현지 콘텐츠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했고, 이를 통해 독립 제작사 매출이 15% 증가했다. 이는 글로벌 혁신과 로컬 창작생태계가 상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둘째, 창작자 권리 보호 체계가 절실하다. 현재 OTT 제작 현장에서는 저작권 일방 양도, 제작비 삭감, 불투명한 수익 분배가 심각하다. 해외에서 활성화된 '창작자 보상권'을 참고할 만하다. 특히, 독일은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창작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도록 하는 추가보상청구권과 정당보상청구권을 도입했는데,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콘텐츠 생태계가 가능하다.

셋째, 이용자 데이터 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플랫폼은 데이터 수집·활용 방식과 추천 알고리즘의 기본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이를 통해 이용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플랫폼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진정한 의미의 데이터주권을 실현하게 된다.

넷째, 디지털 시민성 교육도 시급하다. 핀란드는 초등학교부터 비판적 미디어 소비 교육을 실시해 가짜뉴스의 영향을 최소화했다. 단순 기술 습득을 넘어,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이해력과 책임 있는 소비 능력을 키워야 한다.

OTT와 전통 미디어의 충돌은 위기이자 기회다. 한국은 글로벌 미디어 질서에서 독창적 '제3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드문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K-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은 기회지만, 이 성취가 지속되려면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창작자, 플랫폼, 소비자가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업계는 자율 규제와 윤리 기준을 정립해야 하며, 시민도 건강한 생태계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미디어는 단순 산업이 아닌 민주주의와 문화 다양성의 기반이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한국 사회의 정보 환경과 문화 미래가 결정된다. 창작과 플랫폼, 혁신과 공정성, 글로벌과 로컬이 공존하는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 설계에 모두가 동참해야 할 때다.

정한근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정한근 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원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변인

-전 미래창조과학부 정보보호정책관

-전 미래창조과학부 인터넷정책관

-전 미래창조과학부 대변인

-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진흥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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