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이미지. [픽셀스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4/224883_231085_2911.jpg)
남미작가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빌로니아의 복권'에서 시작하자.
복권은 평민이 즐기는 놀이로 시작했다. 상인이 파는 복권을 사고 당첨되면 은화를 받았다. 복권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자 개선책이 나왔다. 당첨되면 은화를 받는 행운 외에 벌금을 내는 불운도 나올 수 있게 했다.
복권은 성공을 거뒀고 상인은 회사로 성장했다. 하층계급은 복권 참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관철했고 복권은 모두에게 무료로 배포됐다. 복권은 다양화돼 행운에 당첨되면 금전 또는 공적 지위를 얻거나 특정인을 감옥에 넣을 수 있는 권리 등을 가졌다.
불운에 당첨되면 벌금 외에 폭행, 모욕 또는 죽음을 당했다. 추첨은 갈수록 복잡해져 불운에 당첨된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할 경우에 집행인을 뽑고 역할을 나누는 추첨, 추첨결과를 불운에서 행운으로 바꿀 수 있는 추첨, 집행할 때 고통의 크기를 정하는 추첨도 생겼다.
추첨횟수가 무한정 늘어나 어떤 결정도 최종 결정이 되지 못했고 모든 결정은 다른 결정으로 가지를 쳤다. 회사가 복권 내용과 방식을 계속 바꾸면서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 찼다. 자신에게 행운이 없더라도 타인의 불운에 열광했다. 회사는 갈수록 비밀리에 복권을 집행했고 세상 일이 복권의 결과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도 없게 됐다.
6월 3일엔 헌법재판소 탄핵결정에 따라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는 지에 따라 국민 모두에게 행운만 가득하다면 복권 구입에 돈을 내듯 투표를 위해 돈을 낼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돈을 내지 않는데도 투표할 사람이 많지 않다.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한다. 투표에 소극적인 이유가 뭘까. 많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이름을 내밀지만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명을 넘는데 그 중에 대통령감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바빌로니아의 복권에 나오는 '회사' 같은 숨겨진 조직이 국민의 마음에 들 만한 후보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훼방을 놓는 것은 아닐까. 도덕성, 청렴성, 범죄전력 없음 등 그럴듯한 법적, 도덕적 비밀장치를 두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실력자의 참여기회를 봉쇄하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 후보의 '실력'도 마찬가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실력이 발휘될 수 없도록 왜곡해 특정 후보의 특정 능력만 높게 평가되게 하는 등 기준과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아닐까.
6월 3일이 지나면 누군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 그가 누군지에 관계없이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투는 글로벌 경제전쟁을 버텨나가야 한다. 유례없는 경기침체가 세계를 집어삼킬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지난 2024년 2.04%였고 올해는 1.5%를 훨씬 밑돌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보수와 진보로 나눠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대통령처럼 공약을 실현하기도 전에 탄핵되는 대통령이 또 다시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 불운은 그 대통령만 아니라 국민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그렇지 않은가.
집권하면 반대세력을 제거해 그들에게 불운과 고통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진다. 반대세력은 불운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집권세력을 상대로 극한투쟁을 이어갈 수 있다. 적대세력에게 불운과 고통을 주기 위한 각종 장치가 행정과 입법, 정책과 법률이라는 이름을 빌어 교묘하게 작동한다. 서로를 질시하고 적대하는 일이 지속되면 국민통합을 기대하기 어렵고 글로벌경쟁 환경에서 국운이 꽃필 기회는커녕 생존조차 어려워질 것이 명백하다.
대통령선거는 국민 누군가에게 불운을 주거나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바빌로니아 복권일 수 없다. 대한민국을 반석에 올려놓는 일이다. 대통령은 도덕성과 실력 모두 중요하지만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실력이다. 임기동안 성과를 내고 그 실적을 다음 대통령에게 넘겨주는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흠을 찾아 공격하기보다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신뢰하고 도와야 한다. 그것만이 우연에 좌우되지 않는 필연의 대한민국 미래를 만드는 길이다.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디지털 생활자”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