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포스트 DB]](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3/221750_227533_5947.jpg)
옛날에 은(銀)은 광석을 태운 재에서 추출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는데 생산량은 낮았다. 1503년 평민 김감불, 노비 김검동은 납을 이용해 은을 대량 추출하는 ‘연은분리술’ 개발을 조정에 알렸다. 연산군은 직접 시연하게 했다. 무쇠 화로 안에 광석을 태운 재를 두르고 납 조각으로 화로를 채웠다. 화로 주위를 깨진 질그릇으로 덮고 숯을 태워 은을 추출했다. 연산군은 감탄하며 연은분리술의 제도적 시행을 명했다. 민간의 은광채굴도 허용하고 세금을 부과했다.
연산군 폐위후 임금이 된 중종은 농업에 지장을 주고 사치를 조장한다며 은광개발을 억제했다. 재정 보충을 위해 일부 은광 채굴만 허용했다. 그러니 은광에서 몰래 은을 추출해 유출하는 일이 많았다. 인부들은 은광석을 몰래 캐다가 압사하기도 했다. 청나라는 조공으로 은을 바치라고 강요했다. 은 개발은 지속되지 못했고 기술은 일본에 유출됐다. 일본은 세계 3위의 은 생산국이 됐고 은본위제 화폐경제를 확립해 무역을 크게 일으켰다. 당시 우리가 연은분리술을 계기로 농업에서 상업중심으로 전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신기술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혁신이 될 수 있을까. 개발자는 기술의 가치를 알고 키워야 한다. 김감불, 김검동은 연은분리술이 시대를 바꿀 획기적 기술임을 알았다. 낮은 신분임에도 사리사욕에 빠지지 않았다.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산업과 무역을 일으키기 위해 내놓았다. 그들 자신이 성장하는 길도 열렸다.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기술을 놓치지 않고 강화할 줄 알아야 한다. 정책과 법제로 보호하고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연산군은 연은분리술의 파급력을 알고 자신 앞에서 시연할 것을 명했다. 농업을 중시하는 전제왕조에서 이례적이었다. 국가는 신기술로 산업생태계를 만들고 국가발전의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연산군은 연은분리술의 즉시 시행과 은광의 전국 개발을 명했다. 그가 권력을 뺏기지 않았다면, 조선이 은본위 화폐제도를 확립하고 세계무역에 나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신기술이 반드시 우리 것일 필요도 없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처음 나왔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가. 도박이고 투기라며 막았다. 암호화폐를 보유한 국민이 많아지자 그제야 투자자보호를 위해 제도화했다. 초기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경제를 일으킬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나 기회가 아닐지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기술은 개인이나 기업에겐 돈벌이 수단에 그칠 수 있지만 국가에겐 국민을 위한 산업과 생태계를 만들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AI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생성형 AI, 반도체 등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쏟아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랏돈을 많이 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돈이니 아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보라. 세계 기업이 돈을 쓰게 한다. 돈을 쓰는 기업은 수익을 위해 애쓰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AI기업이 만드는 트렌드에 놀라 우왕좌왕하지도 말자.
우리가 잘하는 분야와 숨은 제품, 서비스를 찾아야 한다. AI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찾고(‘포지셔닝’) 연대와 협력을 해야 한다. 방위, 조선 등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AI기업과 연계할 수 있는 모멘텀을 찾는 것도 좋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프라 외에 콘텐츠 등 데이터도 중요하다. 파괴력 있는 K-콘텐츠의 협상력을 높이고 AI발전을 위한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
서구가 던진 AI에이전트, 피지컬AI 등 주제에 매몰돼선 안된다. 그들이 왜 그런 게임의 룰을 만드는지 생각해야 한다. AI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발전할지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중요하다. 거기에 맞는 숨은 기술을 찾는 것이 대한민국 AI 발전을 위한 시작점이 돼야 한다.
기술 전문가의 의견을 듣되 중요한 것은 국민의 창의이고 국민의 마음이다. 국민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AI 만민공동회가 필요한 이유다.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디지털 생활자”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