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갑진년은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2025년 을사년을 이틀 앞둔 12월 29일 무안 국제공항에선 착륙을 시도하던 여객기가 폭발했다. 승무원 2명을 제외한 179명의 인명이 한순간에 희생되는 끔찍한 사고였다. 하늘도 빛을 잃었다.
12월 3일엔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다행히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결의를 하며 6시간 만에 계엄은 끝났다. 그러나 후폭풍은 거셌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결의했고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을 시작했다. 여야 정쟁은 극에 달했다. 수사기관은 내란죄로 관계자를 조사하고 법원은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2024년은 상상불허의 폭염이 덮친 해이기도 하다. 기온은 4월에 이미 27도에 육박했고 10월에는 20도가 넘는 날을 이어가다 30도를 넘는 날도 있었다. 세계가 폭염, 폭우 등 기후변화에 시달렸다. 나쁜 소식이 그것뿐일까.
2024년은 인공지능 딥페이크(AI를 이용해 거짓의 문자, 음성, 영상 등 정보나 콘텐츠를 제작)를 악용한 사이버범죄가 맹위를 떨쳤다. 딥페이크 음란물이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유포됐다. 드러난 피해자만 수백 명에 이르렀고 숨은 범죄까지 더하면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정부정책이 사회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2025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천명 증원하겠다고 의료개혁을 선언했다. 의료계 반발로 전공의 1만 명이 사직했고 의대생도 휴학에 돌입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을 찾다가 사망하는 일까지 있었다. 한숨만 나온다. 국민의 얼굴에 그늘 없는 날이 없었다.
하늘은 대한민국에게 불행만 내리진 않았다. 문학 분야를 보자. 지난 10월 10일 오후 8시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대한민국 작가 한강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것뿐일까. 음악도 두각을 나타냈다. 올해 가요계를 휩쓴 건 단연코 걸그룹 블랙핑크 소속 로제의 ‘아파트’였다. 한국 음주문화에서 ‘랜덤 게임’ 등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미국 빌보드 차트 8위에 진입하며 기염을 토했다. 유튜브,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인의 눈과 귀를 흥분시켰다. K-팝, K-무비 등 한류로 세계를 휩쓴 대한민국 문화가 일과성이 아니라 세계문화를 주도할 강력한 엔진임을 인정했다.
스포츠는 어떤가. 최저 성적이 예상됐던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종합 8위의 역대급 성적을 기록했다. 선수단 규모는 남자축구 등 단체종목 부진으로 최소 규모, 21개 종목에 선수 144명이었다. 대한체육회의 예상 목표는 금메달 5개였는데, 그 예상은 적중하지 못했다. 선수들의 선전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를 획득하며 종합 8위에 오르는 대반전을 일궈냈다.
그렇다. 2024년은 벽두부터 정치, 경제, 사회 등 암울한 뉴스가 많았지만 대한민국의 문화만은 달랐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일제강점기 36년 동안에도,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 중에도, 군사독재 치하에도 웃음과 용기를 잃지 않았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그전보다 높이 도약했다.
2024년의 시련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2025년 을사년은 대한민국 도약의 해가 되어야 한다. 도약 엔진은 무엇인가. 2024년 갑진년, 대한민국의 창의와 투지는 빛났다. 문학, 예술, 스포츠에서 보여준 빛나는 성과와 저력이 그것이다.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들만의 노력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아낌없는 사랑과 후원이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원래 그렇고 그런 나라로 돌아갈 것인가. 조상과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의 성의와 노력이 부족하면 하늘은 언제라도 등을 돌린다. 문화에서 보여준 힘을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로 이어가자. 대한민국이 살아있음을 세계에 보여주자.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디지털 생활자”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