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펀드 K사, 국내 사모펀드 주요 출자자 지목돼 인수 무산
MBK와 6호펀드 출자 구성, '외국법인' 판단 가능성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고려아연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412/218202_223361_18.jpg)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MBK파트너스의 인수 자격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MBK가 외국인 투자자에 해당해 산업기술보호법 등에 저촉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MBK 측은 근거 없는 프레임 씌우기에 불과하고 맞서고 있다.
2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MBK 측은 고려아연의 문제 제기에 자신들의 회사가 국내에 설립된 유한책임회사라고 점을 방어 논리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인수 주체로 알려진 MBK의 6호 바이아웃펀드 구성을 살펴보면 출자 구성이 국내 20%, 해외 80%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외환투자공사(CIC) 등을 비롯해 중국과 중동 자금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 측은 출자 구성을 고려하면 MBK는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외국인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려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결국 MBK가 외국인으로 인정된다면 경영권 인수 시도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과거 한 글로벌 사모펀드가 한국토지신탁(한토신) 인수를 시도했던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한토신을 인수하려 했던 국내 사모펀드의 주요 출자자가 글로벌 사모펀드로 확인되면서 외국인 인수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한토신은 1996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산하에 설립된 공기업이다. 2007년 아이스텀PEF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아이스텀앤트러스트가 한토신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민영화가 시작됐고 아이스텀은 2009년 최대주주에 올랐다.
2013년에는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그해 4월 반도체 장비 업체인 엠케이전자가 참여한 사모펀드 ‘리딩밸류 2호’가 한토신의 2대 주주인 LH의 보유 지분 전량(31.29%)을 매입해 2대 주주에 오른 뒤 엠케이전자가 직접 지분을 추가 매입하며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2대 주주로 밀려난 아이스텀은 국내 사모펀드인 P인베스트먼트에 보유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P인베스트먼트는 신생 사모펀드인 A인베스트와 B인베스트를 GP(무한책임사원)로 글로벌 사모펀드인 K사와 S저축은행을 LP(유한책임사원)로 둔 펀드였다.
하지만 P인베스트먼트가 조성한 사모펀드의 주요 출자자가 글로벌 사모펀드인 K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글로벌 사모펀드인 K사는 특수목적법인(SPC) 3개를 설립한 뒤 각각 출자 비중이 30%를 밑도는 수준으로 P인베스트먼트에 자금을 출자했다.
한토신은 부동산신탁업 라이선스를 보유한 금융사로 분류된다. 금융사는 대주주가 변경될 때 금융위원회로부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인수 주체가 외국인이라면 형사 처분이나 제재 여부 등 여러 요건을 증명해야 하는데 사모펀드를 지배하는 LP의 출자 비중이 30%를 넘지 않으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K사가 대주주 적격성 심사, 즉 외국인 투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썼다는 의혹이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P인베스트먼트는 국내 한 펀드사와 손을 잡고 인수구조를 변경했다. 국내 펀드와 P인베스트먼트가 공동 GP를 맡고, LP 출자 지분도 국내 펀드와 글로벌 사모펀드인 K사가 각각 50%씩 책임지는 구조로 바꿨다. 특히 해당 국내펀드는 의결권 50%와 상호 비토권(거부권)도 가진다는 계약도 체결했다. 동시에 펀드 정관 안에 글로벌 사모펀드인 K사가 펀드 운용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까지도 넣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P인베스트먼트가 외국계 자본인 K사의 대리인이라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글로벌 사모펀드인 K사가 자금을 댄 컨소시엄의 한토신 인수는 사실상 무산됐다.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대주주 승인 심사를 단순 법적 요건 충족으로 보느냐 실질적인 인수 주체 여부로 판단해야 하느냐를 놓고 이견이 있었는데, 후자 쪽으로 무게가 실리면서 인수가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해외 사모펀드가 우회적으로 인수하는 것을 허용해 줄 경우, 한토신 등 금융업뿐만 아니라 외국계 투자자가 경영권을 인수하기 어려운 국가기간산업 등을 우회 인수하는 사례가 급증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한토신 사례가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에도 적용될 수 있을 지 주목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을 인수하려는 MBK가 외국인으로 인정될 경우 국가첨단전략산업법 등에 저촉돼 인수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고려아연이 자회사 캠코와 함께 보유한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이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받은 바 있다.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제13조 1항에 따르면 국가전략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국외 인수·합병·합작 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하려면 산업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국가핵심기술이 해외에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MBK 측은 '외국인 프레임 씌우기'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참여·투자하고 있는 주체인 'MBK파트너스 유한책임회사'는 국내 법인이고 내국인인 윤종하 부회장, 김광일 부회장이 의결권 기준으로 공동 최다출자자"라며 "20년 간 한국에서 국내 법인으로 적법하게 수 많은 투자활동을 수행해온 MBK에 대한 도 넘은 흑색선전과 근거 없는 외국인 프레임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MBK는 회장부터 대표 등기임원,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주요 의사결정권자마저 모두 외국인이"이라며 "외국인 김병주 회장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유일하게 거부권(비토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펀드의 출자 구성과 MBK의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을 볼 때 외국인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로 볼 수 있다"며 "산업통상부와 금융당국 등과 함께 MBK에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이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