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연구원, ‘첨단재생의료 치료 도입이 실손의료보험에 미치는 영향’ 리포트 발간
"비급여 관리에 대한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할 필요 있어"

[사진=보험연구원]
[사진=보험연구원]

첨단재생의료가 중대·희귀·난치성 질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이미 악화된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을 더욱 자극할 수 있는 ‘고가 비급여 리스크’로 경계하고 있다 법·제도 정비로 치료 길은 열렸지만, 치료대상 기준과 가격 관리, 보험 보장 구조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비급여 이용이 확산될 경우 실손보험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9일 보험연구원 김경선·조재일 연구위원은 ‘첨단재생의료 치료 도입이 실손의료보험에 미치는 영향’ 리포트에서 이같은 문제를 짚었다. 두 연구위원은 첨단재생의료가 고가 비급여 치료라는 특성상 실손보험을 통해 비용이 광범위하게 전가될 소지가 크다며, 가격·대상자·보장 구조에 대한 제도 정비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지난 2월 시행된 개정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은 중대·희귀·난치성 질환 환자의 치료 기회를 확대하고 첨단재생의료의 안전성과 산업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포치료·유전자치료 등 첨단재생의료에 대한 안전관리와 지원체계를 규정한 이 법은 최근 개정을 통해 첨단재생의료 치료 제도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임상연구로만 가능했던 첨단재생의료 치료가 중대·희귀·난치성 질환자를 대상으로 허용됐고, 국민건강보험법령상 비급여로 비용 청구도 가능해졌다. 아울러 재생의료기관이 치료 비용을 보고하고, 심의위원회가 치료계획 심의 시 비용을 함께 검토하는 등 공적 비용 관리 장치도 도입됐다. 제도적으로는 문이 열린 셈이다.

이같은 변화는 글로벌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재생의료 시장 규모는 2021년 300억달러에서 2030년 1277억달러(약 177조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1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세포·유전자치료제 품목허가가 빠르게 늘고 있고, 길리어드의 CAR-T 치료제 ‘예스카타’처럼 단일 제품으로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선 사례도 등장했다.

국내 시장도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2002년 첫 첨단바이오의약품(CGT)이 승인된 이후 2020년까지는 세포치료제만 승인됐지만, 2020년 첨생법 시행을 계기로 유전자치료제가 본격 도입됐다. 이 결과 올해 3월 기준 CGT 승인 품목은 세포치료제 12개, 유전자치료제 5개 등 총 17개에 이른다.

치료 인프라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재생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기관 수는 2022년 56곳에서 올해 8월 기준 160곳으로 늘었다. 상급종합병원(44곳)과 종합병원(50곳)은 물론 병원(27곳)·의원(39곳) 등으로 고르게 분포하고 있으며, 성형외과·피부과·한방병원 등도 재생의료기관으로 포함됐다. 지역별로는 서울 70곳, 경기 32곳, 부산 16곳 등 수도권과 주요 대도시에 집중돼 있다.

문제는 이같은 급속한 확산이 곧바로 ‘고가 비급여’ 이슈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첨단재생의료 치료는 국민건강보험법령상 비급여로 규정돼 있어 재생의료기관이 비용을 비교적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고, 치료 특성상 가격이 높게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CAR-T 세포치료제 ‘킴리아’는 급여가 적용되고 있음에도 1회 치료비가 약 3억6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는 기존 유사 시술의 실손보험금 청구 자료를 통해 의료기관별 가격 편차가 상당하다는 점도 짚었다. 카티스템은 570만~3200만원, 이뮨셀은 8만~1100만원, 자가골수무릎주사는 2만~1500만원 등 같은 시술이라도 병원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랐다. 이는 첨단재생의료 치료가 본격화될 경우, 비급여 가격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손보험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치료대상자 기준의 모호성 역시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지적된다. 첨생법 제2조 제6호는 첨단재생의료 치료대상자를 ‘대체치료제가 없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환’, ‘희귀질환관리법상 희귀질환’, ‘그 밖의 난치질환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증질환과 희귀질환은 국민건강보험법과 희귀질환관리법에서 각각 정의·관리되고 있지만, 난치질환을 직접 규정하는 개별 법률과 명확한 의학적 기준은 아직 없는 상태다.

특히 ‘그 밖의 난치질환’이라는 포괄적 표현은 해석 여지를 넓게 남겨두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 문구를 근거로 치료대상 범위를 상업적으로 넓게 적용할 가능성이 있고, 이 과정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환자까지 대상에 포함되거나 보험금 편취를 노린 과도한 치료 권유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보고서는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격과 비급여 관리에 대한 보다 정교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나치게 높은 치료 가격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동시에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임상데이터 축적을 어렵게 만들어 치료 효과와 안전성 검증에도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가 첨단재생의료 치료계획 심의 과정에서 기술별 참고가격을 제시하고, 적정 가격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언했다. 아울러 심의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할 때 심의기관, 치료 환자 수, 치료 비용 등 핵심 정보를 함께 공개해 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보험 보장구조 측면에서는 기존 실손보험 틀 안에서 모든 비용을 떠안기보다는 별도 위험군 설정과 전용 상품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이 뒤따랐다. 첨단재생의료 치료가 중증·희귀질환자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치료를 보장하는 새로운 보험상품이나 특약을 별도로 마련하고, 치료의 필요성과 효과성을 전제로 임상 진료 단계에서 급여 적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혀가는 방식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실손보험은 첨단재생의료 치료를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환자를 별도 위험군으로 분리하지 않고 있어, 고액 비급여를 기존 구조로 그대로 보장할 경우 가입자 간 형평성 논란과 보험료 인상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첨단재생의료 치료를 비롯한 비급여의 투명성·안전성·적정성을 확보하고 실손보험 연계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비급여 가격과 진료기준, 행위 규율이 가능하도록 비급여 관리에 대한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로서는 첨단재생의료와 선진입 의료기술 확대 등에 따른 비급여 남용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보험사와 금융당국이 사후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첨단재생의료 치료대상자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주관 부서의 해석이나 가이드라인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치료 대상이 정의돼야 한다”며 “치료계획 심의 과정에서 대체 치료의 부재와 질환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사례별로 치료대상자의 적합성을 판단하겠지만, 보다 구체적인 대상자 범위가 사전에 제시돼야 심의위원회의 심의 기준도 분명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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