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폐기' 상법 개정안 국회 통과
이사 주주 충실 의무·3%룰 반영
경제 8단체 "경영권 제약 우려"
업계 "재계 과거 과오 반성부터"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긋지긋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인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것이다.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는 ‘3%룰’ 강화도 담겼다.

상법 개정안은 3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재석 272명 중 찬성 220명, 반대 29명, 기권 23명으로 가결됐다. 윤석열 정부 당시 국회 가결에도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법안이 조기 대선을 거쳐 탄생한 이재명 정부 출범 꼭 한 달 만에 극적으로 야당의 협조까지 받아 되살아났다.

이번 상법 개정은 '오너'의 입김이 강한 국내 상장사 경영진도 '거수기' 역할만 하지 말고, 제대로 경영해서 주가로 평가 받는 선진 자본주의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영 활동에서 기업의 성장 가치를 믿고 투자한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라는 바람도 담겨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증시가 제대로 된 값어치를 인정받기 위한 본격적인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로 인해 앞으로 기업 이사회는 '주주 이익'을 지금보다 더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사회 의결 과정에서 주주 이익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하는 절차가 추가되고, 기관투자자 중심의 IR도 개인투자자와 소액주주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 현황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종가와 비교해 41.21포인트 (1.34%) 상승한 3,116.27로 마감했다. 코스닥은 전 거래일 대비 11.160p(1.43%) 상승한 793.33으로 거래를 마쳤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0원 오른 1360.00원으로 거래되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 현황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종가와 비교해 41.21포인트 (1.34%) 상승한 3,116.27로 마감했다. 코스닥은 전 거래일 대비 11.160p(1.43%) 상승한 793.33으로 거래를 마쳤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0원 오른 1360.00원으로 거래되고 있다.

쟁점이던 3%룰은 여야 합의 과정에서 보완 적용됐다. 3%룰은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의결권 3%로 제한하는 안을 일컫는다. 이 외에도 상장회사가 전자주주총회를 현장과 병행해 개최할 수 있도록 하되 일정한 상장회사의 경우 병행 개최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2027년 1월 1일까지 도입하도록 했다.

시행 기대감에 코스피 지수는 1% 넘게 올라 3110대에서 마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41.21포인트(1.34%) 오른 3116.27로 기존 연고점인 3108.25(6월 25일)를 경신했다. 코스피 종가가 3,110선을 넘은 것은 지난 2021년 9월 27일(3,133.64) 이후 3년 9개월여만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6293억원, 기관이 5619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도왔다. 외국인은 특히 코스피200선물시장에서도 4137억원어치를 사들여 현선물 합계 1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개인은 1조2331억원의 매도 우위였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3%룰 보완·집중투표제 제외' 내용을 담은 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적 298인,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3%룰 보완·집중투표제 제외' 내용을 담은 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적 298인,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상법 개정을 지지해온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단체는 "현대의 주식회사는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사회 구성을 지배주주가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그 한계는 명확하다”며 이번에 통과가 보류된 상장사 집중투표제 활성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를 상법의 본래 취지에 맞게 “최대한 신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대해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는 첫걸음이 될 중요한 진전이라는 점에서 이제라도 개정안이 처리됐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이날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가 개정안에 포함되지 못한 점과 관련해선 “의아함과 아쉬움이 남는다”며 “여야가 공청회를 통해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만큼, 이에 대해서도 빠르게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 8단체는 이날 입장을 내어 상법 개정안이 "경영권을 제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경제계는 상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아쉽게 생각한다"며 "자본시장 활성화와 공정한 시장 여건 조성이라는 법 개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고, ‘3%룰’ 강화로 투기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 대해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 8단체는 "국회도 경제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필요 시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경영 판단원칙 명문화, 배임죄 개선,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 등에 대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의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재계가 상법 개정안의 취지와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이미 자본시장 선진국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장사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계가 극성스럽게 걱정하는 기업의 피해는 좀처럼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9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 충실 의무 확대는 국가로 치면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하는 것과 같다"며 "그런데 지금까지 상법은 이 기본적인 선언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고 직격했다.

또 다른 참석자인 소액주주 플랫폼 컨두잇 이상목 대표는 "열심히 하다가 부실기업이 된 게 아니라 애초에 부실기업이 될 작정으로 회사를 망치는 세력이 많다"며 "배임·횡령을 일으킨 대주주에 대한 의결권 제한 조치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전무는 "국내 시장은 저평가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박 전무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미국이 GDP(국내총생산)가 네 배, S&P 500은 열 배로 성장하는 동안 한국은 GDP가 일곱 배, 코스피는 세 배 커졌다. GDP만큼 코스피가 성장했다면 코스피 지수가 6000이 넘었을 것이란 게 그의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계는 반발을 하기 전에 경영 실적으로 승부하기보다 기업 분할·합병이나 사업구조 개편 등으로 사익을 추구하며, 유상증자 등으로 수많은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준 과거 과오에 대한 통렬한 반성문부터 써야 한다"며 "이번 기회를 활용해 총수 일가가 3~4%의 지분만으로 기업 지배에 전권을 휘두르는 '총수자본주의'를 타파하고 기업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기업 가치 제고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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