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언가 특별히 기념하고 싶은 날, 떠오르는 선택지 가운데 단연 '한우'집을 빼놓을 수 없다. 돌잔치부터 승진, 생일, 그리고 오랜만에 모인 가족 모임까지, 우리네 삶의 굵직한 순간마다 한우는 늘 중심에 있었다.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며 번지는 고소한 향, 입안 가득 번지는 진득한 육즙은 그 자체로 축하와 위로의 언어가 된다. 물론 가격이 만만치 않아 일상적으로 즐기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오히려 한우는 더없이 특별한 자리에서만 빛나는 상징이 된다.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증명하는 곳이 바로 논현동에 위치한 '원강'이다. 지난 1995년 문을 열어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노포 맛집인데, 가격이 상당하지만 그 맛과 서비스로 단골들을 모으며 이 일대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한 집이다. '회장님들이 즐겨찾는 식당', '내돈내산아닌 남돈남산(남의 돈으로 남이 사준 물건이라는 신조어)해야만 하는 집'이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말이 아니다.

◇ "비싸도 제값 한다"
원강의 한우는 전남 함평 등지에서 직송하는 최고 품질의 한우 암소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함평은 전라남도 서쪽 서남해에 인접한 곳으로 평온한 곡창지대와 바다가 어우러진 온화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한우의 맛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원강의 한우는 유난히 육향이 진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느낌은 간받이 부위에서 가장 극대화된다.

이집에서 간받이라 부르는 부위는 사실 토시살을 뜻하는데 한 마리에서 극소량만 나와 가격이 가장 비싸다. 불판에 잘 구워 맛보면 차지면서 쫄깃쫄깃한 식감 뒤로 묵직하게 느껴지는 육향이 일품.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늦은 저녁 시간에는 일찍 품절될 정도니 한번쯤 맛볼만한 메뉴다.

이외에도 생등심, 꽃등심, 갈비살, 안창살, 차돌백이, 육사시미 등의 메뉴가 있는데, 꽃등심은 아름다운 마블링으로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을 자랑하고, 안창살은 소 횡격막 부위 특유의 쫄깃함 속에 고소한 육향이 진하게 배어나온다.

고기는 참숯 불판 위에서 원이 한 점 한 점 정성껏 구워 주기 때문에 고기의 육즙과 풍미가 최상으로 살아난다. 여기에 옅게 양념한 파채를 곁들여 먹거나, 개인당 제공되는 시원한 동치미로 중간중간 입가심을 하면 좋다. 가격대는 높은 편이지만 질 좋은 한우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비싸도 제값 한다"는 평을 듣는 곳이다.

◇ 별미로 사랑받는 '무밥'의 매력
오늘 소개하는 원강을 비롯해 서울의 내로라하는 한우집들은 저마다의 시그니처가 있다. 청담에 있는 새벽집에서는 시원한 맛의 '선지해장국', 영등포 또순이네는 고기보다 더 유명해진 '된장찌개'가. 청담에 있는 영천영화에서는 영천 스타일로 무친 '육회' 등이 떠오른다. 원강에서도 한우만큼이나 유명한 메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밥'이다.
소박한 이름의 이 별미는 소고기 자투리와 채썬 무를 넣어 지은 솥밥으로, 70~80년대 서민 밥상에 자주 올랐던 바로 그 무밥이다. 무가 들어가 은은한 단맛과 촉촉한 식감을 자랑하는데,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풍미가 일품이다. 무밥을 주문하면 시래기를 된장에 자박자박 조린 시래기 지짐과, 짭조름한 두부조림, 방금 구워낸 김과 집간장 양념장이 함께 차려진다. 뜨겁게 달궈진 돌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무밥에 특제 간장 양념을 슥슥 비빈 뒤에, 바삭하게 구운 김에 싸서 먹으면 많던 밥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게 된다.
오래전 쌀이 귀하던 시절엔 부잣집 댁에서나 쌀밥을 먹었지 서민들은 보리나 무, 감자, 고구마 같은 곡식과 채소를 넣어 밥을 지어먹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요즘은 이러한 밥을 지어 내놓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도 손님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담백한 차림과 담백한 맛인데, 마치 DNA에 저장이라도 돼있는지 너무나도 반갑고 기쁘게 다가온다. 특히 날씨가 쌀쌀해질수록 달큰한 맛을 품은 무밥 맛이 더욱 좋아지므로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 소박하면서도 특별한 밥을 한끼 먹고 싶다면 이 계절을 추천한다.

무밥을 먹으러 원강을 다시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며, 점심엔 '무밥정식'도 판매하고 있다. 뚝배기불고기와 함께 무밥 또는 콩나물밥 중 선택해 맛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대부분 무밥을 많이 먹는 편인데, 은근한 단맛을 머금은 무가 밥알을 촉촉하게 해줘 목넘김이 부드럽고 소화도 편안하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무밥을 즐기다 보면, 왜 단골들이 "무밥 먹으러 원강을 간다"고까지 말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 원강을 남아있게 만든 최가의 고집
서울에서 한우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은 정말 많다. 식신의 데이터로만 봐도 서울에서 한우구이를 메인으로 하는 집들이 대략 1500곳 정도에 이른다. 유명세가 자자했으나 지금은 없어진 곳들도 많다. 박대감네, 뱀부하우스, 코리아하우스, 하녹, 참예우 등등.. 이렇게 잘나간다는 식당도 까딱하면 없어지는 전쟁터가 외식 시장이다. 매일 새로운 식당이 입이 떡 벌어지는 인테리어를 들고 나오고, 오마카세 형식을 빌려 한우 오마카세를 선봬는 등 업그레이드를 이어가고 있는데도, 원강은 시대의 변화 따윈 아랑곳 않는 듯 고고하다. 요즘 식당들 다 한다는 바이럴 마케팅도 없다. 그저 매일 같이 손님께 내어드릴 나주식 곰탕을 끓이고 고기와 무를 손질하고 까다롭게 고른 식재료로 음식을 준비한다.
직원들의 노련한 손길도 원강을 돋보이게 한다. 테이블마다 숙련된 직원이 고기를 알맞게 구워 주고, 반찬이 조금만 비어도 바로바로 채워주는 세심한 서비스 덕분에 손님들은 편안하게 식사에 집중할 수 있다. 한우의 질과 맛, 그리고 정성을 다한 접객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점이 원강만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매장 벽 한쪽 액자에 걸려있는 글이 인상 깊다. '최가고집의 명예를 걸고 만든 것이니 맛있게 잡수시라는 말'. 그 고집이 가게 곳곳에서 피어오른다. 색이 바래 아이보리와 베이지색의 중간 어디쯤 된 벽지, 반들반들 윤이 나는 테이블, 정갈한 식기, 분주하게 움직이는 숙련된 이모님들까지 늘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고 있는 곳. 그리하야 원강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집이며 앞으로도 남아있을 집'이다. 변치 않는 한우의 깊은 맛과 따뜻한 인심으로 원강은 오늘도 새로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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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 원강
▲ 주소: 서울 강남구 학동로6길 16
▲ 식신 별등급: 3스타
▲ 영업시간: 매일 11:30-22:00
▲ 추천메뉴와 가격: 꽃등심 7만3000원, 간받이 9만3000원, 무밥 1만4000원, 점심특선 4만2000원(2인)
▲ 식신 '얌얌이얌~!'님의 리뷰: 가격 후덜덜해주시는 원강.. 오래된 맛집 포스 풀풀 풍기는데 제가 갔을땐 1층은 영업을 안해서 지하 1층에서 먹었어요. 고기 다 구워주셔서 너무 편하고 좋아용ㅋ 역시 비싸서 그런지 서비스가 좋아요. 국이나 반찬 같은거 계속 리필해주시고~ 여긴 무밥이 유명하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진짜 별미네요 밥이 술술 들어가요~ㅋ 근데 무밥 가격은 너무 한거 같기도 하고 맛있으니까 용서 되기도 하고 참 아이러니 ㅋㅋ

/안병익 식신 대표이사
2022~2024년 한국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2017.07.~2022년 5월. 한국푸드테크협회 협회장
2010년 5월~식신 대표이사
2015년~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
2012~2019년 중앙대학교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
2010~2017년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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