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분쟁 둘러싼 대결, 이미 '가장 빠른 수습' 고비는 지나
협상 통해 '늦어도 가장 적합한 답' 매달리는 게 유일 해법
이미 각 분야에선 충격 각오 중...일부 자산많은 기업 여력 충분
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종가 기준으로 1400원을 넘어선 가운데, 방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방미 일정 중 석연찮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 관심이 모아진다. 환율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가운데 관세 협상으로 인한 투자와 맞물려 통화 스와프 등을 제시하며 소리없는 전투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찬에 불참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인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일보다 3.1원 오른 달러당 1400.6원이었다. 일단 돌파가 이뤄지자 불안감은 더 확대되고 있다. 이날 아침 서울 환시는 8.4원 오른 1409.0원에 개장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한국경제설명회 투자 서밋'을 통해 글로벌 투자자들을 불러모으는 데 적극 나서는 등 '경제 대통령'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이하 모두 각 현지시각) 주재한 각국 정상 초청 환영 만찬에 이 대통령만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 정국은 일단 법원으로 주무대가 넘어가는 모습이어서, 취임 100일선을 막 넘긴 이 대통령으로서는 이제 경제 문제 해결 능력을 과시하는 국면 전환이 절실하다. 그런 때 돌연 중요한 자리에 부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당장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SNS글을 올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영 만찬에 주요국 정상과 배우자, 거물급 외교 인사 등 145명이 모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불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고 관세 협상을 매듭지어야 하는 우리 현실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 환율 불안 극심한데...대미 협상 테이블 마다하는 이상한 제스처?
외교 레토릭상 '몸이 불편해서'는 불만이 있을 때 에둘러 전달하는 기법으로 활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의 만찬 거절이 꼭 야권의 우려대로 "셀프 왕따 인증 아닌가"라고만 단정짓기는 어렵다.
아울러, 어차피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상 단체로 만나는 행사장에서 관세 협상 담소를 시도하지 않아도 주고받을 말은 다 다른 방법으로 전달된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일본에서 5500억 달러, 한국 3500억 달러(약 493조)를 받고 있고(투자받기로 했고), 그것은 선불"이라는 발언을 25일 내놨다. 한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굳이 상호 관세 무역 합의에 따른 한·일본 측 대미투자 약속을 언급하면서 이같이 압박 확인발언을 한 것이다.
![[사진=대통령실]](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9/233930_242433_2516.jpg)
현재 대미 투자를 둘러싼 한·미 협상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거듭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공식화한 형국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만찬은 불참하면서도 구윤철 부총리가 현지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24일) '양국간 통화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미 한국은행이 통화스와프 체결 요청을 미국 당국에 하고 협상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힘을 더 싣기로 한 것이다.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 못하면 환율이 당장 불안해질 가능성이 올라간다. 이는 우리 정부가 관세 협상 그리고 대규모 대미 투자를 확정하려면 우리 쪽에도 일정한 반대급부를 줘야 한다는 절박함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3500억 달러라는 초대형 투자를 기정사실화하면 막대한 외화가 유출되는 효과가 발생, 결국 금융시장 불안(증시와 환율 타격)이 올 것으로 전망된다. 막상 미국과 달러 스와프를 체결한 국가는 선진국 몇 곳에 불과해 우리 측의 요구가 수용될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그럼에도 통화스와프라도 안 해주면 한국으로서는 거대 대미 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힘겨루기를 지속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엄중하다.
◆ 이미 중장기 과제로 변한 관세 협상...환율 불안 잠깐 감수 '벼랑 끝 전술'
결국 환율 문제는 이미 1차적인 마감은 지나쳤다고 요약된다. 타격이 실제로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답을 찾는 가장 빠른 솔루션은 이미 만들 기회를 놓친 것. 실제로 올해 하반기 들어 세계 각국의 통화 가치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 가치는 유독 약세(환율 상승)를 이어가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30일부터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3%대 후반의 상승폭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0.4% 하락했고, 달러 대비 유로화 환율은 보합에 머물렀다. 일본이 우리와 유사하게 달러 대비 엔화 환율 3% 상승을 겪고 있으나, 다만 일본은 자국의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에 머물자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서 해외 투자를 지속하는 선택을 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방적으로 이상한 약세 구도에 노출될 정도로 불안한 국가는 사실상 한국뿐이다.
원화가 유독 이러한 상대적 약세를 이어가는 것은 우선적으로는 3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대미 투자 협상 논란과 관세 협상의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1400원선 돌파라는 심리적 저지선 붕괴가 이뤄진 것은 분명 뼈저린 부분이다. 그러나, 미국 측 압박 내용을 모두 수용할 경우 만약 한국은 단기간 내 대규모 달러 유출을 겪는다. 원화 약세 심화와 함께 금융 시장 불안에 노출될 우려가 커지는 것. 반대로 '선불 방식 투자' 요구를 거부하면, 관세 인하 혜택이 축소·철회될 가능성에 노출된다.
기존에는 환율 문제와 기업 손실 때문에라도 관세 협상을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3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요구안이 가져올 여파에 대한 경고음이 높아지면서 차라리 관세 부담을 안고 투자를 하지 않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일각에서는 대두된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연 2회 추가 기준금리 인하 방침에서 최근 발을 빼고, 매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준은행 총재도 추가 금리 인하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신중론을 펴며 파월 의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 자산 많은 유력 기업들, 환율 불안 다소간 버틸 여력
사정이 이렇게 되면서 관세 협상 타결이 단기 해결을 전제로 한 이슈에서 중장기 힘겨루기 문제로 전환이 이뤄지는 모습이다.
우리 기업들은 일단 어느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자동차는 상반기 말 연결 기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5% 상승 시 법인세비용차감전 순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당기손익 1348억원 증가로 예측했다.
삼성전자는 반기말 기준 환율 위험 평가를 따로 하지 않았으나, 연초에는 원달러 환율 5% 상승 시 3653억원 이득이 발생한다고 전망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반기 말에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 시 9046억원 이득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제시했다.
그리고 현재 삼성전자 등은 예상 범주보다 손실 폭이 작았던 만큼 환헤지 국면에서 선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율 상승 시 이런 효과는 물론 평소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숙제이자 부담이다.
◆ 증권계 "1400 붕괴 일단 고통...연내 하락 전환 기대감"
증권가에서도 어느 정도 고통스럽긴 하겠으나, 일단 미국의 고관세 압박을 '맞고 그대로 가는'식으로 대처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보고서와 발언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9/233930_242435_2620.jpg)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중 주요 쟁점인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이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직접투자 방식으로 합의된다면 연간 1000억~1200억 달러 내외의 신규 달러 수요가 발생해 환율에는 큰 폭의 상방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협상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가리기에는 너무 큰 패배, 이후 불안 요소의 불씨라는 지적인 셈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심리적 저항이 컸던 1400원이 돌파된 만큼 다음 유의미한 상단은 1420원이 될 전망"이라면서도 "당국의 환시 개입에 대한 경계감과 레벨 부담 등으로 추가 상승 속도는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단기간에 하락세로 전환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미국 물가 상승률이 이번 분기를 정점으로 낮아지고 관세 부담도 완화되면 연준의 정책 기조도 변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그는 "연말에는 환율이 하락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올해 적정 환율 수준을 연내 하단 1350원으로 제시했다.
◆ 외환보유고 더 컸으면 더 강한 협상도 가능...이재명 승부수 결과는
이 대통령과 정부의 국면 전환, 특히 환율 불안도 일단 안고 강경한 협상으로 일관하겠다는 태도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 고위 당국자들이 "당국의 힘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는 식으로 스무딩 오퍼레이션으로만 일관하는 것도 이 대통령 행보를 돌반변수가 아닌 자신감 있게 장기적으로 대처한다는 공감대를 반영한 징표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외환보유액이 더 많았다면 심리적인 저지선 문제 등 환율 타격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기준에 따라 계산하면 적정 외환보유액은 9200억달러가량인데, 지금은 절반도 안 된다"면서 지금이라도 이를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버틸려면 '실탄'인 외화를 현재보다 크게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 이 부분에 손을 댈지 시장의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