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단결된 투쟁 승리"...차별적 임금·복리후생 체계 개선 촉구
회사 "동기부여 목적일 뿐" 해명..."노-사 의견 조율해나가는 과정"

[사진=장선영 기자]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KB손해사정지부는 25일 서울 여의도 소재 KB금융지주 앞에서 KB손해사정이 교섭에 성실하게 임해줄 것을 촉구했다. [사진=장선영 기자]

KB손해사정이 노동자 처우를 악화하려다 노동조합 반발에 꼬리를 내렸다. KB손해사정 노조는 임금체계 악화는 막았지만, 여전히 임금과 복리후생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며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을 통해 이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25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KB손해사정지부 소속 조합원 100여명이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금융지주 앞에서 'KB손해사정지부 대의원 총력 결의대회'를 열었다.

KB손해사정과 노조는 지난 6개월간 2025년 임단협을 진행 중에 있다. 노조는 회사가 불성실한 교섭태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들에게 차별적으로 인식되는 '누적식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회사는 전날인 24일 노조 의견을 수렴, 누적식 성과연봉제 도입을 전격 취소했다.

일단 노조 측은 누적식 성과연봉제 도입을 철회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홍인표 사무금융노조 KB손해사정지부 지부장은 "누적식 성과연봉제 도입 철회는 노조의 단결된 투쟁이 만들어낸 값진 성과"라며 "조합원의 땀과 헌신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생존권을 보장하는 전향적인 임금·성과급 안 제시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는 ▲근로자의 업무 효과성을 극대화하고 ▲업무성과와 임금을 연동해 동기부여를 극대화하며 ▲조직의 수익증진과 근로자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된 임금 제도다. 

일반적으로 성과연봉제는 누적식과 비누적식으로 구분하는데, 누적식 성과연봉제는 성과급 반영 부분을 지속적으로 누적시켜 차년도 연봉에 반영하는 것이다. 반면 비누적식 성과연봉제는 성과급은 당해연도 연봉에만 적용시키고, 차년도 연봉에는 반영하지 않는다. 

누적식 성과연봉제는 성과급 위에 다시 성과급이 쌓이는 구조로써 우수 직원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큰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업무 성과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누적식 성과연봉제 도입 취지다.

다만 누적식 성과연봉제의 경우 한 번 저성과자로 평가되 낮은 등급을 받아 임금에 불이익이 발생하면, 이듬해 뛰어난 퍼포먼스로 높은 등급을 획득해도 이미 깎인 연봉을 기준으로 성과급이 회복되기 때문에 만회가 쉽지 않다는 맹점이 있다.  

예를 들어 3000만원 연봉의 노동자가 낮은 평가를 받아 10%의 연봉 삭감, 차년도 2700만원을 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그 이듬해 다시 최고등급을 달성해도 270만원(10%) 밖에 받지 못한다. 지난해 연봉인 2700만원을 기준으로 잡아서다.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건이고, 근로조건이 저하된 것이다.

게다가 누적식 성과연봉제가 도입된다면 고성과자와 저성과자 간 임금 격차가 대폭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특히 실적 압박이 거세짐에 따라 불완전판매, 불법 모집 등 금융사고 유발 가능성이 크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과 소비자가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앞서 지난 2016년 공공기관과 금융권에 누적식 성과연봉제 적용이 활발히 논의됐지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라는 이유로 도입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적용되는 조치의 경우, 노동조합이 있는 기관에서는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 절차를 거치고 노동조합이 없는 기관에서는 근로자 과반의 집단적 동의를 얻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조합원 일부라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만큼 노조로서는 동의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렇다 보니 이번 KB손해사정의 누적식 성과연봉제 도입 철회에 대해 노조에서는 "누적식 성과연봉제는 사실상 '말 잘 듣는' 직원에게 돈을 더 주는 형태"라며 "설령 회사가 제도 도입을 철회했다고 해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으려는 속셈이 들통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KB손해사정 사측 관계자는 "원래 회사에 뛰어난 업적에 대한 성과급 지급만 있고, 성과 차등 임금제도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본래 제도의 취지에 따라 동기부여 및 영업력 제고에 목적을 뒀을 뿐, 지금은 노조와 협의 후 도입을 철회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사 간에 지속적으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으며,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 측은 누적식 성과연봉제 도입을 저지했을 뿐 여전히 임단협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했다는 주장이다. 모회사 지배 개입은 물론, 손자회사 차별 구조라는 근본 문제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홍인표 사무금융노조 KB손해사정지부 지부장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또 다시 외면된다면, 오늘의 결의는 더 큰 투쟁의 불씨가 돼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사진=장선영 기자]
홍인표 사무금융노조 KB손해사정지부 지부장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또 다시 외면된다면, 오늘의 결의는 더 큰 투쟁의 불씨가 돼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사진=장선영 기자]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한 노조원은 "회사는 불이익을 주는 임금제도만 철회됐을 뿐, 임금인상안·성과급 수준·복리후생 개선안은 여전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또 모회사보다 턱없이 낮은 성과급 지급률과 차별적 임금·복리후생 체계를 고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B손해사정지부 노조는 임단협상이 결렬될 시 총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홍인표 지부장은 "KB손해사정 경영진은 모회사인 KB금융지주와 KB손해보험의 눈치만 보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며 "노동 가치를 존중하는 진정한 경영자의 모습을 원한다"며 사측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 합의 사안으로, 지주사가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한 사실도 없다"며 노조 측 주장을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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