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 관세 위기 공감 속 임단협 타결
'역대급 호황' HD현대중 노조, 나흘째 전면 파업

현대차 노사가 지난해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교섭대표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단협 상견례를 열고 있다. [현대차 제공]
현대차 노사가 지난해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교섭대표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단협 상견례를 열고 있다. [현대차 제공]

울산광역시에 생산 거점을 둔 양대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HD현대중공업의 올해 임금·단체협약 교섭에 희비가 엇갈려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 등으로 위기감이 커진 현대차 노사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교섭을 마무리했으나,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추진 등으로 호황기를 맞은 HD현대중공업 노사는 오히려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동조합은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전날 조합원 표결에 부친 결과 투표자 기준 과반인 찬성 52.9%로 가결됐다. 합의안은 기본급 10만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성과금 450%+1580만원, 주식 30주, 전통시장상품권 20만원 지급 등을 담고 있다.

각종 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명절 지원금, 여름 휴가비, 연구능률향상 수당 등을 포함하는 방안과 국내 공장에서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 양성, 차세대 파워트레인 핵심부품 생산 추진 등도 포함했다. 교섭 초기부터 쟁점이 됐던 정년 연장은 일단 현재 촉탁제도(정년퇴직 후 1+1년 고용)를 유지하면서 향후 관련 법 개정에 대비해 노사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노사는 지난 6월 18일 상견례 이후 83일 만인 지난 9일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잠정합의안이 15일 실시된 조합원 투표를 통과하면서 올해 임단협이 완전히 마무리됐다. 노조가 교섭 과정에서 세 차례 부분 파업을 벌여 '7년 연속 무쟁의' 기록은 무산됐으나 노사는 단 한 번에 잠정합의안을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통과시키는 성과를 냈다.

잠정합의안 도출 이후 일부 현장 노동조직들이 임금 인상 규모가 충분하지 못하다거나 정년 연장을 이뤄내지 못했다며 부결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조합원은 가결을 선택했다. 미국의 관세 압박 영향 등으로 국내 완성차 산업 위기에 조합원들이 대승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차는 "이번 가결을 토대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어려움을 노사가 함께 극복하고,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두겸 울산시장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현대차 노사의 올해 임단협 타결을 환영했다. 김 시장은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울산 시민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현대자동차 노사 협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라며 "다행스럽게 노사는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을 잘 알고 있었고 서로에 대한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마침내 타결을 이뤘다"라고 밝혔다. 김 시장은 그러면서 "힘든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이뤄내 임단협 타결에 대해 120만 울산 시민 모두의 마음을 담아 노사 양측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덧붙였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지난 3일 4시간 부분파업을 벌인 가운데 노조 조합원들이 사내 도로를 돌며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제공]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지난 3일 4시간 부분파업을 벌인 가운데 노조 조합원들이 사내 도로를 돌며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제공]

◆ 노사 입장 평행선…HD현대중 파업 지속

반면 HD현대중공업의 노사 관계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3년 치 수주 물량이 쌓여 있을 정도로 역대급 조선 호황기를 맞았으나, 노사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두 달 가까이 교섭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노사는 임금 인상에는 동의하지만, 규모와 방식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나흘째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올해 들어 11차례 부분 파업을 벌인 이후 지난 11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다만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수가 많지 않아 전체 공정이 멈출 정도의 차질은 없는 상태다. HD현대중 노조의 조합원은 6500여명이다.

조선 건조 현장은 자동차 생산설비처럼 일부만 파업해도 전체가 멈추는 컨베이어 시스템이 아니라 공정별로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조합원 대다수가 일손을 놓지 않으면 한꺼번에 모든 생산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 난항으로 백호선 노조지부장이 10일 오전 울산 조선소 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백 지부장이 올라가 있는 40m 높이 턴오버 크레인. [HD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 난항으로 백호선 노조지부장이 10일 오전 울산 조선소 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백 지부장이 올라가 있는 40m 높이 턴오버 크레인. [HD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백호선 HD현대중 노조지부장의 40m 높이 턴오버 크레인 고공 농성은 이레째 이어지고 있다. 턴오버크레인은 선박 구조물을 뒤집는 데 사용하는 설비다. 노조는 2021년 7월에도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전면파업을 하며 이 크레인에 오른 바 있다.

백 지부장은 농성을 시작하며 "회사는 미포조선을 합병하고, '마스가' 프로젝트 실현 구상으로 세계적 선박 건조 기업으로의 위상을 높이는 가운데에서 그것을 이루어낸 구성원들과 조합원에 대한 예우와 보상은 찾아볼 수 없다"며 "올해 임금요구안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고 기업의 지불 능력에 비교해서 과하거나 유별나지 않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 7월 18일 기본급 13만3000원(호봉승급분 3만5000원 포함) 인상, 격려금 520만원, 특별금(약정임금 100%) 등을 포함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이후 여러 차례 더 교섭을 진행했으나 임금 인상 규모와 방식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문제는 노사 대립이 더 길어져 추석 연휴를 넘기면 타결 시기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월이 지나면 회사 측 인사에 따른 교섭 위원 교체부터 연말 노조 임원 선거까지 줄줄이 이어져 교섭 자체가 사실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교섭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접점을 찾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조는 하루속히 임단협이 타결되길 바란다면서 이상균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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