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추진 고려아연에서도 이사회 진입도 노려
서스틴베스트 "과다 겸임에 충실의무 미준수 우려"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고려아연 기타비상무이사 후보로 추천한 김광일 MBK 부회장이 등기임원 등 인수 기업들의 주요 보직 겸직을 국내에서만 무려 열여덟 곳이나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위 비철금속기업 고려아연의 이사회까지 합류할 경우 김 부회장이 겸직하는 등기임원직은 무려 열아홉 개로 늘어나고, 중국 등 해외 인수 업체에 이름을 올린 것까지 더할 경우 스무 곳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여러 기업에서 수십여개의 보직을 겸직하며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의 약칭) 등 충실한 이사회 운영과 거버넌스 개선을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 나아가 기타비상무이사는 겸직 제한 요건이 없는 점을 노려서 그 숫자를 무한정 늘리는 이른바 '문어발 겸직'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김 부회장의 겸직 수준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롯데카드와 오스템임플란트 등 사모펀드 MBK가 인수한 기업들의 공시 등 확인된 것만 따져도 대표이사 한 곳, 공동대표이사 두 곳, 사내이사 한 곳, 기타비상무이사 열세 곳, 기타비상무이사 겸 감사위원 한 곳 등 수십 개의 기업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다.
특수목적법인(SPC) 등을 제외해도 김 부회장의 과다 겸직 논란은 여전하다.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SPC를 뺀 김 부회장의 겸직 수는 총 아홉 개에 달한다. △홈플러스 대표이사 △딜라이브 기타비상무이사 △딜라이브 강남케이블TV 기타비상무이사 △네파 기타비상무이사 △엠에이치앤코 기타비상무이사 △롯데카드 기타비상무이사 △오스템임플란트 기타비상무이사 △오스템파마 기타비상무이사 △메디트 기타비상무이사 등이다.
이에 따라 국내 3대 의결권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는 "과다한 겸임으로 인해 기타비상무이사로서 충실 의무를 다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며 김 부회장의 고려아연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안에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이 외에도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 한국ESG연구소, 한국ESG평가원 등이 김 부회장의 이사회 합류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
반면, 충실한 이사회 운영과 거버넌스 개선을 고려아연 인수·합병(M&A)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MBK-영풍 측은 과다 겸직 문제를 숨긴 채 김 부회장의 경력만을 강조하고 있다. MBK-영풍 측은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의안 분석과 의견 자료'를 통해 "MBK 주요 투자 실적 건 기업의 M&A와 투자 전략 수립을 주도했다"며 “법률적 전문성과 재무 전략 능력 고려 때 고려아연의 중장기 비전의 실천과 경영 안정화를 위한 M&A, 재무, 법률, 회계 전문가로서 최적임 후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이 등기임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일부 기업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로 인해 업계에서는 그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한 상황이다. 서스틴베스트는 “홈플러스의 SSM사업부문(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은 2017년 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약정 없이 가격 할인 행사를 실시하면서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방식을 통해 납품업자에 약 17억원의 판촉비용을 전가하고, 납품업자와 체결한 86건의 계약에 대해 계약 서면을 지연 교부하는 방식으로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해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24억1600만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회장은 2009년 3월부터 2010년 1월까지, 2015년 10월부터 2024년 1월까지 홈플러스의 기타비상무이사를 역임했고, 지난해 1월부터는 홈플러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특히 2019년 10월부터 김 부회장이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는 롯데카드에서는 배임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스틴베스트는 "롯데카드 직원 두 명은 2020년 10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부실 협력업체와 제휴 계약을 체결해 롯데카드 자금 105억원을 지급하고,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66억원을 돌려받아 배임 혐의로 고발당했다"고 밝혔다. 다만 서스틴베스트는 과징금과 처분의 규모 등을 고려해 두 사례를 참고 사항으로만 기재한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