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 "탄핵 불발로 원화가치 급락할 듯" 경고
9일 주가 급락 가능성도 제기
피치 "사태 장기화땐 신용등급 부정적"

비상 계엄 사태를 초래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 무산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원화 가치가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외환 전문가들은 1400원대 초반으로 잡았던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50원까지 높인 상태다. 특히 1%대 저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정치 리스크로 인한 불안 심리가 시장에 더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9일 개장하는 국내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유력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시아 금리·외환 전략 공동 책임자인 아다르쉬 신하는 8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한국 원화가 탄핵 실패로 9일 장이 열리면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탄핵 실패로 불확실성이 더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좋지 않아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탄핵마저 불발해 원화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정치 불안뿐만 아니라 경제 펀더멘털도 원화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한 주간 원·달러 환율은 24.5원 뛰어올랐다. 주간 기준 지난 1월 15~19일(25.5원) 이후 약 11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엔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1442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2022년 10월 이후 2년여 만에 최고치다. 계엄 해제 후 다시 안정을 되찾았지만 이는 외환 당국의 개입 영향으로 분석된다.
환율이 크게 오르면 기업의 매입 외환(해외에서 받을 외화를 은행으로부터 선할인해 받는 여신) 물량이 늘어나고, 대기업 위주로 외화 예금을 빼내면서 은행의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 파생상품 관련 추가 담보 제공 요구(마진콜)도 유동성 부족의 잠재 요인이다. 외화 표시 자산이나 해외 출자금 가운데 신용 위험가중자산(RWA) 등이 늘어 금융그룹 전체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발표를 하고 있다. [KTV 캡처]](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412/217056_221984_4021.png)
원화 가치는 주요국 통화 중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지난주 원화가 달러 대비 1.86% 평가 절하된 반면, 유로화(+0.03%), 엔화(+0.10%), 파운드화(+0.26%), 대만달러(+0.51%) 등은 달러 대비 강세를 나타냈다. 위안화(-0.36%), 호주달러(-1.32%) 등은 달러 대비 약세였지만 원화보다는 절하 폭이 크지 않았다.
특히 뉴욕시장에서 거래된 5년물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마킷 기준)은 36.52bp로 지난 6일(현지시간) 전날보다 1.10bp 상승했다. CDS 프리미엄은 국가 신인도를 반영하는 지표다. CDS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채권을 발행한 국가의 신용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CDS 프리미엄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장중 36bp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윤 대통령 탄핵 정국이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면서 정치 불확실성이 금융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환율이 1450원대를 돌파해 1500원에 근접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 연구위원은 8일 통화에서 "탄핵 정국이 잘 마무리된다는 전제하에 1400원대 초반을 예상했는데 탄핵안 부결 등으로 사태가 장기화하면 1450원까지 내다봐야 할 것 같다"며 "내년 1분기까지는 쉽지 않은 파고들을 넘으면서 환율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변동성도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도 “탄핵안 부결로 정국 불안정성이 심화하면서 외국인의 추가적인 자금 이탈을 부추겨 원화 가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당분간 1400원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고 당국 개입 노력 등으로 상단은 1450원 정도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도 “제2의 계엄 같은 위험들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이지만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환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사태만으로 환율이 올랐다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우리도 사태 전과 비교했을 때 환율 상단을 1435원으로 10원 정도 높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시장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투자 심리가 더 꺾여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할 우려가 크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 정치적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정책 공백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주가와 외국인 수급 변동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도 “탄핵안 가결이든 부결이든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도 지난 6일 보고서를 통해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로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적 성과 또는 재정이 약화될 경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우리 정부의 외환보유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영향으로 달러 강세가 나타나면서 두 달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4153억9000만 달러로 10월 말 4156억9000만 달러에서 3억 달러 줄었다. 비상 계엄 후속 대책으로 정부가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선언하고 즉각적인 시장 안정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외환보유액은 앞으로 더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