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HBM3E 12단 3분기 양산 준비"
삼성전자 “범용 메모리에서 벗어난 맞춤형 HBM 캐파 확대”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2일 이천 본사에서 ‘AI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2일 이천 본사에서 ‘AI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차세대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경쟁이 불꽃이 튀고 있다. 삼성보다 먼저 HBM 시장 선점에 성공한 SK하이닉스는 생산능력(캐파) 확장을 통해 왕좌 수성에 나섰고, 도전자 삼성전자도 기술력과 물량으로 왕관의 탈환을 노리겠다고 천명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는 2일 경기 이천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장 리더십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해 세계 최고 성능인 HBM3E(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12단 제품의 샘플을 내달 제공하고, 3분기에 양산이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25일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HBM3E 12단 제품은 올해 3분기 개발을 완료하고 고객 인증을 거친 다음에 내년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밝힌 것보다 다소 앞당겨진 것이다. 

이는 HBM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가 지난달 20일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업계 최초로 개발한 HBM3E 12단 제품을 올해 2분기 이내에 양산한다고 공식 발표하자, SK하이닉스가 더욱 구체적인 HBM 로드맵으로 맞불을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청주 M15X 공장과 용인 클러스터, 미국 인디애나 투자 등을 통한 HBM 캐파 확대와 글로벌 고객사와의 협력도 강조했다.

곽 CEO는 "미래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청주 신공장과 용인 클러스터 등 국내는 물론 미국 인디애나 공장 투자로 생산 역량을 적기에 확충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과감한 R&D 투자를 통해 테크 리더십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엔비디아에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8월 HBM3E 개발을 알린 지 7개월 만인 지난 3월 메모리 업체 중 가장 먼저 HBM3E D램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HBM3E 12H D램 제품 이미지. [삼성전자 제공]
HBM3E 12H D램 제품 이미지. [삼성전자 제공]

한편 HBM3에서 설 자리를 놓친 삼성전자는 차세대인 HBM3E 시장을 노리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최근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하반기 HBM3E로의 급격한 전환을 통해 고용량 HBM 시장 선점에 주력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김 부사장은 "올해 HBM 비트그로스(bit growth·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 기준 출하량을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리고 있다"며 "내년에는 HBM 공급 물량을 올해 대비 최소 2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HBM3E 8단 제품은 이미 초기 양산을 개시했고, 빠르면 2분기 말부터 매출이 발생할 전망"이라며 "업계에서 처음 개발한 HBM3E 12단 제품 샘플을 공급 중이며 올해 2분기 중 양산을 예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선점에는 실패했지만, HBM3E부터는 초격차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이러한 기술력 부문에서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24Gb(기가비트) D램 칩을 실리콘 관통 전극(TSV) 기술로 12단까지 적층했다. 그 결과 업계 최대 용량인 36GB(기가바이트) HBM3E 12단을 구현했다.

지난 3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의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실물 전시된 HBM3E 12단 제품에 '젠슨 승인'(JENSEN APPROVED)이라고 적으며 기술력에 대해 인증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도 지난달 26일 구성원 대상 경영 현황 설명회에서 "AI 초기 시장에서는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다"며 "2라운드는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 상무는 2일 자사 반도체 뉴스룸 기고를 통해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업계 최초로 고성능컴퓨팅(HPC)용 HBM 사업화를 시작하면서 인공지능(AI)용 메모리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제공]
김경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 상무는 2일 자사 반도체 뉴스룸 기고를 통해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업계 최초로 고성능컴퓨팅(HPC)용 HBM 사업화를 시작하면서 인공지능(AI)용 메모리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제공]

특히 삼성전자는 자사 기술의 차별점으로 ‘맞춤형 HBM’을 꼽았다.

HBM3E 12H(12단 적층)의 기획과 개발을 담당한 김경륜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 상무는 2일 뉴스룸 기고문을 통해 "업계에서 단시간에 따라올 수 없는 종합 반도체 역량을 바탕으로 AI 시대에 걸맞은 최적의 설루션을 지속해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더 이상 범용 제품이 아니다"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는 "HBM 제품은 D램 셀을 사용해 만든 코어 다이와 시스템온칩(SoC)과의 인터페이스를 위한 버퍼 다이로 구성되는데, 고객들은 버퍼 다이 영역에 대해 맞춤형 IP 설계를 요청할 수 있다"며 "이는 HBM 개발·공급을 위한 비즈니스 계획에서부터 D램 셀 개발, 로직 설계, 패키징·품질 검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최적화가 주요 경쟁 요인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상무는 “올해 하반기는 HBM 공급 개선으로 인공지능(AI) 서버 확산이 가속할 뿐만 아니라 일반(Conventional) 서버와 스토리지 수요까지 증가하는 선순환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성장하는 생성형 AI용 수요 대응을 위해 HBM 생산능력(캐파) 확대와 함께 공급을 지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5세대 HBM인 HBM3E 8단 제품에 관해 "지난달부터 양산에 들어갔으며, 업계 내 고용량 제품에 대한 고객 니즈 증가세에 발맞춰 업계 최초로 개발한 12단 제품도 2분기 내 양산할 예정으로 램프업(생산량 확대) 또한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삼성전자는 성장하는 생성형 AI용 수요 대응을 위해 HBM 캐파 확대와 함께 공급을 지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두 글로벌 기업의 총수들도 젠슨 황 CEO와의 교류를 통해 엔비디아와 협력 관계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황 CEO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나 찍은 사진을 공유했다. 최 회장은 이 만남에 관해 "혁신의 순간"이라고 소개했다. 곽 CEO는 이날 간담회에서 "최태원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이 각 고객사, 협력사와 긴밀하게 구축돼 있는 것이 AI 반도체 리더십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최 회장의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5월에는 미국 출장을 떠났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황 CEO와 함께 일식집에서 회동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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