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한계기업 정리돼야 경제 회복…금융지원만으로 성장둔화 못 막아"
"퇴출·진입 선순환 필요...정화매커니즘 정상작동해 경제 역동성 증대해야"
한국 경제가 수차례 위기를 겪으며 기업 수익성 악화와 투자 부진을 겪었지만,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경제 '정화 매커니즘(cleansing effect)'이 작동하지 않아 국내 성장추세가 둔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금융지원만으로는 '이력현상'을 완화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기업의 퇴출과 진입 선순환을 이루는 한편, 신생기업의 진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제언이 제시됐다.
12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경제위기 이후 우리 성장은 왜 구조적으로 낮아졌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소수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외감기업 2200여 곳)에서 투자가 정체 또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투자부진은 금융제약보다 더 수익성 악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금융위기(2008~2009년), 코로나19 팬데믹(2020~2022년) 등을 거쳤다. 그러나 경제 성장 추세는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둔화됐다.
한은은 이는 위기로 인한 부정적 수요충격이 투자의 이력현상(hysteresis)을 통해 성장의 추세적 둔화로 이어졌다고 추정했다. 이력현상은 일시적 충격이 실업률, 투자 등 경제변수의 장기 경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한은은 기업의 투자 부진이 금융지원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는 위기 이후 기업들이 자금 부족보다 수익성 하락으로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장기적인 투자 회복을 위해 기업의 본질적인 영업이익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제시했다. 또 신생기업이 활발히 시장에 들어설 수 있도록, 수익성이 극도로 낮은 기업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정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영업이익 증가 및 감소 기업군별 지표 흐름, 영업이익 분포 추이. [자료=한국은행]](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11/237730_276453_5847.png)
이는 위기 때 발생한 구조적 수요 감소가 기업의 이익 축소뿐 아니라 투자와 성장의 장기적 둔화를 초래한다는 점과 맞닿아 있다.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영업이익 분포가 금융위기 이후 전체적으로 낮아졌고, 특히 하위 10% 기업의 이익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한은은 비효율 기업이 퇴출되고 효율적인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말하는 정화 메커니즘 작동 후 국내 투자·성장의 변화를 조사했다.
퇴출 고위험기업의 재무적 특성을 실제 퇴출기업과 비교해 보면, 고위험기업의 수익성과 레버리지는 뒤쳐졌지만, 유동성비율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이는 해당 기업들이 수익 창출력과 재무구조는 취약하지만, 대출 만기 연장이나 유동성 지원을 통해 단기적인 부도나 신용 경색을 피하며 시장에 잔존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4~2019년 중 퇴출 고위험기업은 전체의 3.8%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실제 퇴출된 기업은 2.0%에 그쳤다. 사실상 그간 정화효과가 미흡했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퇴출 고위험기업이 실제로 퇴출되고 산업 내 정상기업으로 대체됐다면 해당 기간 중 국내 투자는 3.3%, GDP는 0.5% 증가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팬데믹 이후(2022~2024년) 기간에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졌다. 퇴출 고위험기업 비중(3.8%)은 이전 시기와 유사했다. 다만 실제 퇴출기업 비중은 0.4%에 불과했다. 이는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기업의 퇴출이 오히려 줄어드는 등 한계기업이 실제 퇴출이 지연된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팬데믹 이후 기간 중 퇴출 고위험기업이 산업 내 정상 기업으로 대체됐을 경우 국내 투자가 2.8%, GDP는 0.4%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은은 성장 둔화를 완화·반등하려면 금융지원을 하더라도 기업의 퇴출과 진입이 원활히 이뤄지는 구조가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동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 혁신적 초기기업 등에 금융지원을 선별적·보조적으로 운용해 정책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력 산업 기술경쟁력의 우위를 유지하면서 규제완화를 통해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고, 새로운 제품·서비스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웅 한은 조사국 조사총괄팀 차장은 "기업의 퇴출과 진입을 통한 정화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지고 시장의 역동성이 제고되면서 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수익성이 부진한 한계기업이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정화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며 "또 신생기업의 진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도와 경제의 역동성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