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 파동 발생일인 11월 3일 신제품 '삼양1963' 출시
우지와 팜유 혼합한 '골든블렌드 오일'로 프리미엄 시장 공략
"창업주 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한 풀어드리는 마음"

'삼양1963' 출시 발표회에서 신제품을 들고 있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삼양식품 제공]
'삼양1963' 출시 발표회에서 신제품을 들고 있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삼양식품 제공]

삼양식품이 36년 만에 우지(牛脂·소기름)를 사용한 라면을 부활시켰다. 3일 서울 중구 보코서울명동 호텔에서 열린 신제품 '삼양1963' 출시 발표회에서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우지를 "삼양라면의 풍미를 완성하던 진심의 재료이자 정직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신제품을 공개했다.

이날은 1989년 공업용 우지 사용 의혹으로 촉발된 우지 파동이 발생한 지 정확히 36년이 되는 날이었다. 행사 장소 역시 창업주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보고 1963년 한국 최초의 라면을 개발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곳으로 선정됐다. 

우지 파동은 "삼양라면에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익명의 투서로 시작됐다. 당시 언론 보도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삼양식품은 우지 라면을 회수하고 단종했다. 이후 보건사회부 조사와 1995년 고등법원, 1997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법적으로는 명예를 회복했지만, 기업 이미지는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삼양식품은 그 이후 라면 제조에 팜유만 사용해왔다.

김동찬 삼양식품 대표는 "익명의 투서 한 장으로 한 기업이 무너질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고 떠올리며 "우지 라면 재출시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그 시간을 통해 배운 경험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지 라면은 부활까지 3년 이상의 기획 과정을 거친 전사적 프로젝트였다. 김정수 부회장은 "이를 4000명 임직원과 우지 사건 당시 근무했던 1000여 명, 그리고 그 가족들의 염원으로 완성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삼양식품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내부 자신감이 커졌고, 이제 그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됐다는 에너지가 모였다는 것이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신제품 '삼양1963'을 소개하고 있다 [삼양식품 제공]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신제품 '삼양1963'을 소개하고 있다 [삼양식품 제공]

신제품 '삼양1963'은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의 오리지널 레시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리미엄 미식 라면이다. 핵심은 '동물성 기름' 우지와 '식물성 기름' 팜유를 황금비율로 혼합한 '골든블렌드 오일'이다. 1960년대 라면 유탕 처리 방식을 적용, 면을 튀겨 고소한 향과 감칠맛을 강화했다.

이병훈 삼양식품 연구소장은 "우지 단독으로는 풍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팜유와의 블렌딩 비율을 최적화했다"고 설명했다. 골든블렌드 오일은 조리 시 면에서 용출돼 면과 육수가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사골육수 기반의 액상스프에 무, 대파, 청양고추를 더해 깔끔한 뒷맛과 얼큰함을 구현했고 단배추, 대파, 홍고추 등 큼직한 후레이크로 식감을 더했다.

윤아리 삼양식품 품질안전 부문장은 동물성 기름에 대한 건강 우려에 대해 "동물성 유지와 식물성 유지 모두 1g당 9칼로리로 동일하다"며 "콜레스테롤 함량도 계란 노른자보다 훨씬 낮다"고 부연했다.

우지가 팜유보다 2배가량 비쌈에도 신제품을 출시한 것은' 프리미엄 라면 시장 공략'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지난해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은 전체 77%에 달했지만, 국내 매출은 3921억원으로 23%에 그쳤다. 최근 소비자들이 맛과 품질을 중시하는 고급형 라면을 선호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만큼, 프리미엄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복안이다.

채혜영 삼양브랜드부문장이 신제품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삼양식품 제공]
채혜영 삼양브랜드부문장이 신제품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삼양식품 제공]

채혜영 삼양식품 신성장브랜드본부 부문장은 "원가 부담이 크지만 프리미엄 라면 시장 성장세를 고려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원가 부담은 극복 가능한 수준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직한 맛의 복귀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영상, 광고, 팝업 스토어 등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하며 기존 삼양라면을 넘어서는 매출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수 부회장은 "36년이 지난 같은 날 다시 진실을 세우고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이날이야말로 정직으로 시대의 허기를 채운다는 삼양의 철학이 가장 뜨겁게 증명되는 순간"이라며 "상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었던 삼양식품이 K-푸드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지금, 36년 만에 정직과 진심으로 제자리를 찾는 것"이리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창업주인 고 전중윤 명예회장이 평생 품고 계셨던 한을 조금은 풀어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아 울컥했다"며 "삼양1963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초석이다. 한국의 미식 문화를 세계로 전파하는 글로벌 식품 기업이 됐지만,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또 한 번의 혁신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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