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정부 "기업 정상 경영 위축 막아야"…제도적 개선 필요성 주목
노조·경제개혁연대 "공공성·기업 책임 약화·국제 신뢰 추락" 지적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뉴스1]](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fee/202509/234250_242866_4740.jpg)
정부와 여당이 기업 경영 부담 완화를 위해 형법상 배임죄 폐지에 나섰다.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배임죄는 경영진의 사적 전횡을 견제하고, 회사 자산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패인데, 이를 폐지한다는 것은 금융업권 특유의 공공성과 책임경영을 훼손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배임죄 폐지가 현실화될 경우 금융시스템 리스크 확대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30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 당정 협의에서 민주당과 정부의 기본 방향을 배임죄 폐지로 잡았다고 발표했다. 그는 "과도한 경제 형벌은 기업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소상공인까지 옥죄면서 경제 활력을 꺾어왔다"며 "배임죄는 이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 처벌 체계 들어온지 벌써 70년...이제 득보다 실 크다?
배임죄는 우리 사법체계에 도입된지 70년 역사를 자랑한다. 그만큼 당연시돼 왔다는 것.
형법 제355조에 따르면,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를 말한다.
배임죄는 계약 당사자나 회사 임직원이 회사 혹은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히고 자신 또는 제3자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 성립한다. 예를 들어 회사 직원이 회사 자산을 헐값에 처분하거나, 경쟁사와 몰래 이중 계약을 맺어 손해를 입히는 경우 등이 규율 대상이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며, 제356조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 규정돼 있다.
김 원내대표는 "배임죄는 기업인의 정상적 경영 판단까지 범죄를 몰아 기업 운영과 투자에 부담을 줘왔다"며 "이로 인해 배임죄 개선은 재계의 오랜 숙원이자 수십 년간 요구돼 온 핵심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는 국민 권익과 민생 경제를 위한 계획"이라며 "군부 독재 유산인 형사 처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며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없도록 대체 입법 등 실질적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정은 힘을 모아 경제 형벌 중 시급히 개선이 필요한 110개 형벌 규정을 우선 개선하기로 했다"며 "그간 기업 경영 활동을 옥죄는 요인으로 지목된 배임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선의의 사업주가 피해받지 않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개정 의지를 내세웠다.
◆ 폐지 추진에 부작용 우려 비등…"국민과 신중한 논의 우선돼야"
![[사진=사무금융노조, 경제]](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9/234250_242863_2925.png)
이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기업 경영진에게 무책임의 면죄부를 주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행위"라며 형법상 배임죄 폐지 시도를 반노동·친재벌 입법으로 규정하는 성명을 냈다.
노조는 배임죄 폐지가 금융산업의 공공성과 건전성을 훼손하고,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확대시킬 것으로 봤다. 노조 관계자는 "금융산업은 국민 자산을 관리하는 공공적 성격을 가진 분야"라며 "이같은 성격을 지닌 은행·증권·보험사 경영진이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 자금을 남용하고도 배임죄로 처벌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곧 국민과 투자자, 가입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법적 형평성을 붕괴시키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노조 관계자는 "현 정부와 여당은 노동조합에 회계공시 강화, 쟁의권 제한 등 더 많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그런데 기업 경영진에 대한 형사 책임을 없애겠다는 것은 법적 형평성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소위 '재벌의 무책임'을 합법적으로 보장받는 사회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외에서는 여전히 배임죄 처벌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한국만이 배임죄를 폐지하는 것은 기업지배구조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경영진 책임을 덜어주는 '재벌 특혜 국가'로 간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독일은 형법(StGB) 266조에 배임죄(Untreue) 조항을 두고 고의적·중대한 의무 위반을 엄격히 처벌한다. 프랑스도 형법상 신뢰위반죄(abus de confiance)로 회사 자산 남용을 처벌하며, 일본 역시 형법 247조에 한국과 동일한 배임죄 조항을 두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독립된 배임죄 조항은 없지만 사기, 횡령, 신의 위반 등을 통해 동일한 처벌 체계를 유지한다.
노조는 ▲형법상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죄 폐지 추진 중단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결합을 통한 경영진 책임 강화 ▲경영진의 권한 남용 통제 가능한 제도적 장치 마련 ▲금융산업 특수성·공공성 감안한 별도 감독·처벌 장치 고도화 등을 요구했다.
경제전문단체 경제개혁연대 역시 "형사처벌은 어떤 입법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라며 일방적 배임죄 폐지 추진 행보를 비판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어떤 행위의 죄질과 피해(보호법익) 정도를 비롯해, 역사, 문화, 시대적 상황, 나아가 국민일반의 가치관, 법감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범죄예방을 위한 형사정책적 필요성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배임죄 때문에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나 적극적인 투자의사결정이 위축된다는 것은 해묵은 억측이고 기우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배임죄가 있어서 회사 등에 손해를 가하는 불법행위를 예방하고, 경제정의가 조금이나마 지켜졌다는 평가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게다가 그간 배임죄 폐지를 주제로 한 입법 논의가 사실상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부와 여당이 논의를 제안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배임죄 폐지라는 결론부터 던진 것은 성급하다"고 꼬집었다.
배임죄의 경우 법리로 인정돼 온 경영판단원칙 명문화나 사문화된 상법상 특별배임죄 폐지, 가중처벌에 관한 목소리는 있었어도 배임죄 폐지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국민의힘에서도 최근에 배임죄 폐지가 담긴 법률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적은 없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특히 정책권자가 정량적인 감축 목표부터 먼저 정하고, 형사처벌을 정비하겠다는 것은 합리적이거나 형벌에 관한 신중한 접근으로 볼 수 없다"며 "의견 수렴이나 입법 논의를 생략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