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작년 6월 정상 판정 받으면서 업체 교체 권고"
정부 "더 쓸 수 있겠다 판단해 교체 안해"
ESS 돌파구 삼던 배터리 업계 '노심초사'

대전광역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LG에너지솔루션이 생산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사용 기한을 넘긴 까닭으로 지난해 6월경 교체 권고를 받았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계속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안 그래도 안전성 논란 등으로 인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시름하고 있는 이차전지 업계는 이번 사고로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 또 다시 입방아에 오르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반에 대한 우려가 확산돼 귀추가 주목된다.
국정자원은 29일 "발화된 배터리는 지난해와 올해 정기검사 결과에서 모두 정상 판정을 받았다"며 "다만 지난해 6월 정상 판정을 받으면서 교체 권고를 받았는데, (사용 연한인) 10년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기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없어 지속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에 불이 난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2014년 생산해 판매 업체인 LG CNS에 납품했다. 국정자원의 설명은 사용 기한(10년)이 이미 1년을 넘겨 LG CNS가 교체를 권고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실제 지난해 권장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교체를 권고한다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밝히며 이를 공식화했다. 그는 "그 외의 배터리들은 전부 내구 연한이 도래하지 않았다"며 "2017년 배터리가 같이 있는 상태에서 1~2년 더 쓸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실제 이상 상태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배터리 제품에 대해서는 권장 기간을 지켜 사용하겠다"며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제품. [LG에너지솔루션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509/234167_242750_216.jpg)
아울러 국정자원은 이번 화재와 관련해 "배터리를 교체한 것이 아니라 정보 시스템과의 이격을 위해 지하로 이동 작업을 하던 중에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작업 당시 비전문 업체가 선정되고, 아르바이트생이 다수 투입됐다는 의혹도 나온다. 특히 작업자 실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현재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김민재 행정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무자격 업체가 배터리 운반에 투입됐다는 내용은 확인 결과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 이전 준비 중 화재가 발생했고, 이 때 작업자는 자격을 보유한 전문 기술자이자 화재 부상자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아르바이트생 다수 투입 등 의혹도 제기됐지만 실상은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화재 경위와 별개로 한 번 불이 나면 열폭주로 인해 단시간 내 진화가 어려운 배터리 특성상 ESS 사업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관련 업계에서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윤활유를 활용한 액침냉각 등의 기술 개발을 확대하고 있지만, 작업자 실수 등으로 인한 화재까지 원천 차단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296건의 배터리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까지 약 23기가와트(GW)의 ESS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2029년까지 2.22GW 규모 ESS를 추가 설치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540메가와트(MW) 규모의 제1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을 마무리한 데 이어 연내에 2차 입찰도 끝내기로 하고 지난 19일 사업자 간담회를 열었다.
배터리 업계는 이번 사고의 여파에 노심초사하면서도 화재 자체를 예방하거나 불이 났더라도 확산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개발해왔던 만큼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1위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핵심으로 삼는다. 전압·전류·온도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과충전이나 과열을 사전에 차단하는 구조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기반 분석을 접목해 개별 셀 단위까지 미세한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이와 함께 모듈 단위에서 화재 전이를 방지하는 설계를 갖춰 열폭주 발생을 차단하고 있다.
SK온은 열 차단막과 냉각 플레이트를 적용해 셀 간 열 확산을 막는 솔루션을 마련했다. 또 폭발 방지 기술까지 확보해 안전성을 높이고 있다. 삼성SDI는 주력 ESS 제품인 SBB에 독자 개발한 '함침식 소화 기술'을 적용했다. 배터리 셀에서 열이 발생하면 모듈 내부와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소화 약제를 분사하는 원리다. 또 배터리 내부의 온도와 압력이 증가했을 때 발생한 가스를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벤트', 특정 전류가 흐를 때 회로를 끊어버리는 '퓨즈'를 도입해 화재 발생시 인접 셀로 열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이차전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국내외 ESS 수요 덕분에 오랜만에 업계가 되살아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사태가 발생해 걱정이 크다"며 "액침냉각 등 열폭주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