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제 총파업날, 제일은행 광화문-우리은행 서소문 '미스터리 쇼퍼' 방문
총파업 일부 직원 이탈에도 오히려 일처리 빨랐다...펀드 등 복잡 업무도 이상 무!
일부 인력 파업 시위 현장 나간 틈에도 업무 공백 없어...'고참의 힘' 빛나
부탁 안 한 업무들까지 꼼꼼히 챙겨...'오래된 고객이신 것 같은데'
'일 안 하고 고액연봉' 프레임 대신 은행원 전반의 성실함 믿어줄 필요 지적도

"잘 들고 오셨습니다. 요새는 (대포통장 규제로) 새로운 예금통장 만드는 게 쉽지 않거든요. 이렇게 예전 계좌가 남아있는 경우 부활시켜 사용하시면 편합니다. 요모조모 부계좌로 활용해도 좋고요. 바로 해 드릴게요." "통장 표지를 보니 정말 오래된 고객님이시네요(미소). 계좌는 사용하실 수 있겠습니다. 몇년 전 거래기록이라도 나중에 보실 일 생길 수도 있는데 '통장정리(종이통장에 그간의 내용을 인쇄해 주는 서비스)'도 같이 해 드릴까요? 시간 괜찮으세요?"

SC제일은행 광화문지점 [사진=임혜현 기자]
SC제일은행 광화문지점 [사진=임혜현 기자]
우리은행 서소문지점 [사진=임혜현 기자]
우리은행 서소문지점 [사진=임혜현 기자]

2만2000명이 참석한 3년 만의 대잔치. 2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가 총파업 집회를 연 가운데, 일선 은행 영업점의 대응 능력은 훌륭했다. 소비자 불편 최소화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

이번 금융 총파업 시도는 주 4.5일제 도입이라는 시대적 소명과 맞닿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일반시민들이 파업 취지 중 가장 큰 이슈인 주 4.5일제 시행 필요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관심을 기울여주는가다. 하지만 사측에서 꼬리를 잡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제도를 시행하면 금융소비자들이 불편한 시대가 온다는 것.

시선은 그래서 다른 부분으로 옮겨간다. 일부든 전부든 총파업 혹은 근무시간 조정 등의 형태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현재의 은행원과 영업점포들은 어떻게 대고객 서비스를 진행하며 버텨낼 수 있을까?

우선 "지점 중 한두명 정도가 총파업에 나갔고 나머지는 정상 근무 중"이라는 모 은행 홍보팀 등의 발언을 기반으로, 각 영업점의 26일 총파업 당일의 영업 실태를 한 번 경험해 봤다.

일괄적으로 금요일에 반을 쉬는 주 4.5일제가 아닌, 부분적인 탄력 근로제식 4.5일제라는 절충안(대안)이 수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으므로 이런 비상 영업 형태에서의 소비자 경험도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테스트베드로 택한 곳은 SC제일은행 광화문지점과 우리은행 서소문지점 등 2곳. 이번 총파업 집회가 열린 광화문과 멀지 않다. 즉, 시내 중심가로 다양한 금융 업무가 모두 등장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이날 두 지점 창구에 제시한 업무와 궁금증은 ▲ 오래 쓰지 않아 속칭 '잡좌 상태'인 은행 계좌를 부활시키는 업무 ▲ 그 통장에 새로 체크카드를 발급해 여기에 연결하는 것 ▲ 아울러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타 업무, 즉 외환 환전이나 적금, 펀드, 더 나아가 ETF 등 더 복잡한 업무를 추가로 이행할 수 있는지 등이었다.

즉 인원 차질이 생긴 상황에서 손이 많이 가지만 빛은 안 나는 업무 내지 실적에 보탬은 되나 금일 사정상 살짝 모호한 업무를 다수 들고온 소비자가 나타낸 셈. 이들 은행에는 직장명과 주소가 일반 기업 내지 연구소로 돼 있으므로 취재목적을 눈치채지 않도록 하는 미스터리 쇼퍼 역할엔 차질이 없다.

기자가 우리은행과 제일은행 영업점에 부탁한 일들은 사실 해당 점포에는 큰 영업 실적이 되지 않는 일명 '깡치' 업무라고 은행 내외에선 평한다. 실제로 이런 업무를 바쁜 시간대나 월말 등 대고객 업무가 쏠리는 날 일선 점포에 굳이 가져가서 질의 내지 부탁하면, 대단히 성가셔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체크카드 발급은 현재 카드발급 동의서가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과거 몇년새 비약적으로 복잡해져 노력 대비 성과가 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파업 이슈가 있는 날,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민생지원금 이슈로 관공서와 금융기관에 문의가 많은 날에는 별로 반갑지 않은 업무인 셈.

적금, 펀드와 ETF 역시 마찬가지다. 설명할 항목이 많고 가입 동의 등도 처리 사항이 많다. 파업일 바쁜 상황이라면 선뜻 처리에 나서기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두 은행의 2개 지점 모두 "해당 계좌는 잡좌까지는 아니고 사용 제한 상태인데, 더 오래 방치하면 되살리는 절차가 더 복잡해진다", "지금 상태에서 사용 제한만 풀면 되겠는가"를 빠르게 확인,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더해 "인터넷 뱅킹을 오래 쓰지 않은 계좌의 경우 나중에 다시 집에서 온라인으로 이를 살리려 시도하면 잘 안 될 수가 있다. 지금 지점에 나온 길에 과거 인터넷뱅킹을 해지하고 새로 신청하면 어떻겠는가" 등 '요구받지 않은 과욋일'도 선제적으로 제의하는 모습들이었다.

두 지점 모두 고참급 행원이었음을 감안해도 평소 대비 늦지 않거나 오히려 빠른 마무리는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손이 빠른 이들 덕분에 점포는 붐비지 않고 잘 운영되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복잡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펀드, 적금, ETF 등 소비자도 잘 대응하는 게 가능해진다. 파업으로 일손이 빠져나간 날에도 소비자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서비스가 거의 평소처럼 잘 제공됐다는 점은 신뢰도를 높이기에 충분한 부분이었다. 

금융노조가 26일 총파업 집회를 광화문에서 진행했다. 세간에서는 1억 연봉인들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비판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노조의 주 4.5일제 추진 진심을 들여다 볼 때 고액연봉 프레임을 한번쯤 배제하고 관찰해 달라고 반박한다. [사진=임혜현 기자]
금융노조가 26일 총파업 집회를 광화문에서 진행했다. 세간에서는 1억 연봉인들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비판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노조의 주 4.5일제 추진 진심을 들여다 볼 때 고액연봉 프레임을 한번쯤 배제하고 관찰해 달라고 반박한다. [사진=임혜현 기자]

한 은행 관계자는 이런 사례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현재와 같은 정도의 집회와 인력 이탈은 충분히 나머지 근무 인력이 메울 수 있다"면서 "다만 이것이 완전히 '뉴노멀'이 될지는 단언키 어렵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관계자는 "이날 영업점들이 모두 정상업무가 가능했다는 것, 대기인원 우려도 사실상 없던 일로 끝난 점은 고무적이다. 은행원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징표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어쨌든 '일 안 하면서 고액연봉' 프레임을 아무 때나 과도하게 가져다 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 "파업에 동참하든, 안 하든, 주 4.5일제를 찬성하든, 관심이 없든 모두 같은 은행원이고 자기가 맡은 고객과 업무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사회인일 뿐이다. 모두 다 지나친 비판적 시각 대신 애정의 눈빛으로 바라봐 달라"는 관계자 반응 및 요청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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