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소연 작가
그림 : 이소연 작가

아이들의 세계와 부모의 세계는 물리적으론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생각의 시공간은 전혀 다른 곳인 듯하다. 부모는 세상이 던진 틀에 어쩔 수 없이 맞추거나 세상을 지레짐작하여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삶을 살았다. 아직 그 틀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은 생각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니 당당하고 기발하다. 

헌이 수영선생님이 헌이를 데리러간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다. “헌이에게 아빠가 뭐하시는 분이냐고 물었어요. 헌이가 뭐라고 한지 아세요? 맨날 텔레비전 보고 잠만 잔대요.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회사에서 한창 일이 많던 시절엔 녹초가 되어 집에 오면 텔레비전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쉬거나 꾸벅꾸벅 조는 일이 많았다. 그게 헌이 기억에 남았나 보다. 자식,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나. 이제 집에 있을 때는 잠도 못자겠다. 나도 잠 안자고 놀아주고 싶다. 그런데 피곤한 걸 어쩌란 말이냐. 고달프구나. 아빠의 청춘. 

그래도 부모 노릇은 해야 한다. 헌이, 연이가 편식을 하고 음식을 자주 남길 때가 많았다. 답답해서 참지를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아빠가 어릴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형제간에 다투며 남김없이 먹었는데, 너희들은 계속 이렇게 먹는 둥 마는 둥 할 거야?” 평소 조용하던 내가 목소리를 높인 탓인지 헌이와 연이가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다. 서로 쳐다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한다. 
“아빠. 어릴 때 힘 많이 들었구나. 하지만 지금은 우리랑 사니까 좋지? 음식도 많고......”

또 언젠가 아빠로서 공부하느라 힘들어 하는 헌이에게 용기를 주려고 한 마디 했다. 
“네가 힘들 때, 어려울 때, 공부가 잘 안될 때, 낮이나 밤이나 아빠가 네 뒤에 서 있다고 생각하렴.”
그러곤 아빠로서 멋진 말을 했다고 생각하며 헌이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헌이가 대답한다. 
“그럼 아빠가 귀신되는 거야?”

필자의 어릴 때도 생각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 것 같다. 학교에서 덧셈, 뺄셈 시험을 쳤는데 10문제 중에 2문제를 맞혔다. 100점 만점에 20점이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 나 산수 시험 쳤어.” 하며 시험지를 자랑스럽게 엄마에게 던져주었다. 그날 밤 엄마에게 맞아 죽을 뻔 했다. 내가 시험지를 엄마에게 드린 그 시각에 엄마는 계모임을 하고 계셨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우리엄마 착한마음 갖게 해주세요>(홍익출판미디어그룹) 중에서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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