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한편을 보자. 1977년 ‘신현실’에서 펴낸 ‘시인학교’에 등재된 작가 김종삼의 시 ‘장편(掌篇) 2’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뜻으로 붙인 제목이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청계천변 10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이끌고 와 서 있었다.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태연하였다.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배경은 일제강점기다. 일본제국주의의 경제 수탈이 심하여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거지소녀는 어떠했을까. 일본제국주의가 찔끔 허용해준 경제 생태계에도 감히 끼지 못했을 것이 뻔하다. 누군가를 위해 심부름을 하거나 하루 종일 구걸을 하며 가까스로 삶을 이어갔다. 그녀에겐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다. 아무리 철이 없는 나이라고 하지만 세상과 시대에 이리저리 채였을 어린 소녀가 오늘은 당당하다. 주인 영감이 내쫓아도 꼼짝도 않는다. 그 당당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 날은 눈먼 아버지의 생일일 뿐 아니라 거지소녀도 주인공이다. 오늘만은 밥값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국밥이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지 알 필요가 없다. 그전까지 그 집 앞에서 구걸을 했었더라도 상관없다. 오늘 10전짜리 두 개를 가지고 있는 한 그녀는 다른 손님처럼 국밥 2인분을 요구하고 아버지와 즐길 수 있다. 그것은 소비자로서 그녀의 권리다. 생성AI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는 생성AI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세하게 알진 못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당당했던 그녀처럼 우리도 주눅들 필요가 없다.
왜 하필 지금 생성AI일까.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다. 기업들은 비용절감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미래를 위해 연구개발을 열심히 할 수는 있어도 신규 서비스 출시 등 모험을 할 때가 아니다. 세계 사람들의 삶을 고통으로 내몰았던 코로나 판데믹이 이제 끝났다. 정부의 재난지원금 등 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으로 인해 물가 상승 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았다. 미국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시장에서 현금 유동성이 줄어들자 부동산 등 현물시장이 위축되고 경제성장이 멈추었다. 인터넷, 가상자산, 메타버스, 모빌리티 등 대부분의 산업이 추진동력을 잃었다. 새로운 산업과 시장은 불필요한 소비를 꼭 필요한 소비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소비가 위축되니 신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2023년 1월 미국 CES(국제 전자제품 박람회), 2월 스페인 MWC(세계 이동통신 전시회)에서도 인공지능, 모빌리티 등 기존 논의를 확대했을 뿐 크게 달라진 모습이 없었다. 그런데 2023년 3월 14일 발표된 Open AI의 챗GPT 4는 달랐다. 입력란에 질문을 입력하면 답변을 생성하여 보여주는데 깜짝 놀랄 수준의 정확도를 보였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버전을 출시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와 대학연구소는 때를 기다린 듯 보고서를 통해 생성AI가 근로자에게 초능력을 부여한다, 생산성을 100배 또는 200배 향상한다, 향후 10년간 9200조원의 시장을 창출한다는 등 정말 근거가 궁금한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생성AI모델 개발과 활용을 독려하는 정책과 사업전략을 발표하고 생성AI를 어떻게 행정과 사업에 반영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다시 묻는다. 왜 하필 지금 생성AI일까. 첫째, Open AI의 챗GPT 마케팅 전략이다. 메타버스, 모빌리티 등 다른 모든 산업이 현금 유동성과 수요 부족으로 위축된 상태였다. 오직 챗GPT만이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 상용화가 가능한 형태로 발표되었고 결과는 ‘대히트’였다. Open AI의 기업가치와 예상 매출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뚜렷한 경쟁 상품이 없는 시장에서 홀로 올라선 독무대였기에 큰 관심을 끌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챗GPT의 수준을 보고 전세계 교수와 연구자, 언론이 앞을 다투어 찬양 일색의 강연과 보도에 나섰다. 그들은 Open AI가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광고판이었다. 정부는 오픈AI 창업자를 초청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챗GPT의 출시전략은 기가 막힐 정도로 노련했고 홍보전략은 세련되었다. 컨설팅업체 등과 연계하여 치밀한 전략 수립 과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의 글로벌 경제 전략과도 일치한다. 그 속엔 미국의 절박함이 담겨있다. 미국은 미소 냉전 시대에 자본주의 국가 그룹을 이끌면서 경제전쟁에서 승리했다. 소련은 강력한 국방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폐쇄적인 경제시스템으로 인해 국방기술을 경제기술로 전환하는데 실패했다. 미국은 소련이 붕괴된 후에 유일무이한 최강국이 되어 세계경제를 견인했다. 언젠가 그 시장조차 포화되고 인건비 등 비용이 증가하면서 경제성장에 부담이 되었다. 미국은 전략을 바꿨다. 반도체 등 주요 미래 산업의 기획, 설계 부분을 미국이 맡고 제조, 유통 부분을 중국, 인도 등 외국에 이관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미국과 세계의 동반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중국에서 인건비 등 비용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나아가 미국의 자리까지 노리기 시작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기획, 설계부분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기술 성장을 했다. 미국을 경쟁자로 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미국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고 미국 주도의 첨단산업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미중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성AI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세계경제를 미국 주도로 이끌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를 주고 있다.
셋째, 생성AI는 기업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한다. 생성AI의 출현은 기존의 기업문화를 바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기업들은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생성AI의 활용방안은 놀랍다. 챗GPT기능을 외부 고객에게 제공하면 그 고객이 챗GPT를 이용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다(챗GPT API). 문서, 파워포인트, 도표 작성을 지원함으로써 고객의 업무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외부 기업의 다양한 서비스를 챗GPT 플랫폼 안으로 가져와 연결하면 고객의 요구를 더욱 만족하는 답변이 나온다(챗GPT Plugin). 검색을 넘어 소설, 시, 그림, 영상, 과제, 업무용 자료 작성 등 다양한 형태의 창작 결과를 보여준다. 많은 기업들이 챗GPT 등 생성AI를 자신의 사업에 활용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진 장밋빛 전망만 무성할 뿐 가시적인 성과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경제침체기에 생성 AI가 관심을 끌 수 있는 실질적 이유가 있다. 생성AI 등 인공지능이 신사업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것을 넘어 기업의 비용을 줄여줄 수 있다. 원래 경제침체기에는 투자를 미루고 비용을 줄여 실적을 지키려한다. 전산 인력을 재조정하고 AI기술에 밝지 못한 직원은 도태된다. 최근 프랜차이즈 식당을 다녀온 분은 안다. 언제부턴가 주문은 나란히 들어선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한다. 처음엔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직원을 대면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편리하다. 일반식당도 마찬가지다. 식탁에는 패드 형태의 기기에 메뉴가 나오고 그 자리에서 주문하고 결제까지 할 수 있다. 금융기관은 어떤가. 영업소를 줄이고 있다. 콜센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에는 직원과 연결하기도 쉽지 않다. ARS, 챗봇, AI상담이 콜센터 직원을 대체하고 있다. 많은 직장인이 일자리를 잃고 있고 젊은 세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빅마우스’ 교수와 연구자, 언론은 그것이 대세라고 이야기를 거듭하고 사람들은 체념한다. 생성AI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핵심수단이라는 점에서도 기업은 아쉬울 것이 없다.
넷째, 생성AI의 출현은 소비자 인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AI를 통한 자동화 등 새로운 분위기를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생성 AI를 이용해 검색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업무에 활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읽힌다. 소비자들이 AI 경험을 높이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 생성AI가 AI경험을 진작하여 AI 상품과 서비스 소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 소비자로서의 훈련을 미리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생성AI가 경제침체기에 우리 곁에 나타난 이유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생성AI가 가져오는 미래에 우리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새로운 기업을 일구고 산업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제 생성 AI 등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다. 그 기술생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부가 되고 있다. 그로 인한 기술적 소외감과 무력감도 커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생성AI경제의 소비자로서 주체임을 각성해야 한다. 소비자가 없으면 생성AI든 뭐든 존재할 수 없다 소비자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권리를 찾아야 한다. 생성AI의 작동과 위험 요소 등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당당하게 묻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성AI시대를 허용하면서 우리를 지켜내는 법과 윤리다. 일제강점기 국밥집 앞에서 당당하게 요구하던 거지소녀의 당당함은 21세기 우리도 갖추어야 할 디지털시대 덕목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