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으로 풍요로운 사회다. 그럼에도 더 강한 집단에 소속되고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싸운다. 그렇게 성취해야 진짜 자유로운 삶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얻은 자유의 획득과정과 결과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도 좋을까.

자유란 무엇인가.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을 보자. 소극적 자유(freedom from)는 외부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을 자유다. 강물, 모닥불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적극적 자유(freedom to)는 나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자유다. 그런 삶은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므로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조직력, 강제력, 속임수를 동원하면 공동체를 전체주의 등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공동체의 다양성과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말한다. 인간은 중세봉건, 왕조의 예속에서 해방되면서 처음으로 자유를 가졌다. 과거엔 권력이 시키는 일을 하면 보호받으며 살 수 있었다. 자유 상태에선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 선택,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그 부담은 불안을 동반한다. 견뎌내지 못하면 광신적 종교, 정치집단 또는 약물 등에 빠져들기 쉽다. 정신적, 물질적 울타리를 얻지만 진정한 자유를 뺏기고 노예상태로 돌아간다. 사이비종교, 정치집단에 넘어가 피해를 본다(권위주의적 도피).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파괴적 도피). 단조롭고 반복적인 습관에 중독된다(기계적 도피). 대중문화, 유행 등에 탐닉한다(순응적 도피). 결국 공동체와 타인의 자유를 파괴한다. 자유의 가치를 알고 책임을 감수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디지털시대는 공동체 안에서 세상과의 접촉면이 넓어지고 촘촘해진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서울 등 수도권에 삶이 집중된다. 아파트, 대중교통, 직장, 쇼핑몰 등 밀착형 생활공간이 는다. 오프라인에서 시작해 온라인, 모바일, 가상공간으로 확대된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단톡방, SNS, 게임, 온라인쇼핑몰, 메타버스 등 디지털기기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 

여기서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옛 시장과 충돌한다. 모빌리티, 데이터, 인공지능 등 기업은 시장을 개척할 자유를 외치지만 기존의 기득권과 끝없는 싸움을 한다. 온라인은 접속을 통한 경제적 편리를 가져왔지만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법률정보 대중화와 권리의식 증대로 웬만해선 양보가 없다. 법률조문을 들이대고 욕설을 하며 다툼을 이어간다. SNS에서 논쟁을 하다가 분을 참지 못하면 실제 만나 주먹다짐을 한다.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동조자를 규합하여 집단싸움을 만든다. ‘신상털기’로 약점을 찾아내 공격한다. 규모가 큰 분쟁은 정치쟁점으로 만들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다툰다.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 분쟁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디지털 공간은 얼굴을 직접 보지 않는다. 긴장감이 떨어지고 예의와 배려를 잊기 쉽다. 좋아질 기미가 없는 경제 환경에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의 자유만 중요하고 타인의 자유는 안중에 없다. 자유와 자유의 끊임없는 투쟁이 이어진다.

[픽셀스 이미지 제공]
[픽셀스 이미지 제공]

인간에겐 이성과 비이성이 있다. 비이성을 자유의 영역으로 올려 실현하는 경우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자유는 신박한 아이디어를 내어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 키울 수 있다. 엘론 머스크가 전기자동차, 위성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에 인공지능이 알았다면 당장 그만두라 할 것이다. 인공지능 학습데이터에 미래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이 처음 반도체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자유를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비이성을 자유의 영역으로 올리면 잘못된 결과도 낳을 수 있다. 독일 나치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방법으로 독일 민족의 자유를 실현하려고 했다. 새로운 시장가치를 창출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에 미치는 위험을 간과할 수 있다. 비이성은 창의와 혁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지만 범죄의 영역으로 가면 공동체를 망하게 한다. 

디지털시대에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면서도 의무와 책임이 분명한 건강한 자유 관념을 확립해야 한다. 디지털이 가져오는 새로운 가치를 존중하되 기득권을 무시해선 안된다. 기득권을 포섭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타인보다 무조건 많은 자유를 가지려고 해선 안된다. 하나의 가치만을 맹종하지 말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나의 자유 확대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음을 항상 유의해야 한다. 새로운 자유를 만들려는 노력도 신중해야 한다. 새로운 자유가 기존의 자유와 맞부딪히면 갈등과 분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누군가의 자유만 살아남을 수 없다. 소통하고 양보하여 대안을 찾아야 한다. 키오스크를 이용하여 영업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디지털 약자도 쉽게 키오스크를 활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를 위해 법을 만들고 권리를 신설하면 국가 재정, 민간기업 비용이 증가한다. 자유의 신설에 이득을 보는 사람 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디지털시대, 진정한 자유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사람을 유혹하는 구호에 그치지 말고 공동체의 안정과 타인의 자유 존중이 우선돼야 한다. 

/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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