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적인 대결 정치와 정치 불신 시대에도 어김없이 선거철은 다가온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노회한 정치인들과 정치 지망생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유우석의 시 시문추풍(始聞秋風·처음 가을바람 소리를 들으며)에서 한 구절을 보자.
마사변초권모동(馬思邊草拳毛動·말이 변방의 풀을 먹을 생각하니 말린 털이 꿈틀대고) 조면청운수안개(雕眄靑雲睡眼開·독수리는 푸른 구름을 보려고 졸린 눈을 번쩍 뜨네).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부끄럼 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어떤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뽑아야 할까.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는 국회의원 연구단체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과 함께 매년 ‘국회를 빛낸 바른 정치 언어상’을 시상한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연구진의 평가지표에 따라 국회의원의 국회 공식 발언을 대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한다.
선정된 국회의원들은 자랑스러워할까. 보도자료 배포 등 지역구 주민과 지지자들에게 알린다. 선정된 국회의원의 부모님, 자녀 등 가족들이 더 좋아한다. 그러나 바른 언어상 선정이 좋다고만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왜일까. 디지털시대는 카카오톡, 유튜브, 페이스북 등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통해 지지자, 후원자와 소통한다. 바른 언어를 쓰는 것이 국회의원의 인지도 및 인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높은 구독자수를 자랑하는 인기 정치인 미디어를 보면 바른 언어보다 막말과 폭언을 쏟아내고 정적이나 다른 정당을 매몰차게 공격한다. 골수 지지자들은 ‘정치팬덤’을 형성하여 자신이 후원하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게 무조건적 지지를 드러낸다. 지지하는 정치인과 싸우는 정적에 대해선 모욕하고 공격한다. 정적의 지지자인척 다가가 정보를 캐내는 밀정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법적, 도덕적 문제가 있어도 무조건 감싼다. 희생양을 찾기도 한다. 단순한 지지를 넘어 대가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옳은 것일까. 국민과 지역구민이 용납할 수 있는 일인가. 바른 언어를 쓴다는 것이 지지자를 모으거나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정치인이 바른 언어를 쓰겠는가. 정치인만 탓할 일은 아니다.
정치인은 운이 좋아 생각없이 국회의원이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목표가 뚜렷하다. 국회 입문 이후 재선, 삼선 등 선수를 높이면서 정권을 잡고 국회와 당 및 행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 근본은 지지자와 국민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하고 달성해 나가는 것에 있어야 하리라.
중국 초한지를 보자. 진시황의 행차를 본 항우는 큰 소리로 ‘나라고 저 자리에 오르지 못하겠는가’ 했고, 유방도 ‘사내라면 저 정도 자리까진 올라가야지’ 했다. 진나라 폭정에 농민 반란을 일으킨 진승은 뭐라고 했는가.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는가’ 라고 했다. 당시 백성은 권력을 위한 착취 대상이었고 섬길 대상이 아니었다. 백성을 위한다는 마음은 없고 오직 권력 장악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요즘 정치는 다를까. 선거 때만 되면 간과 쓸개까지 내어줄 듯이 하다가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기에 바쁘다. 옛날과 같이 이권에 개입하여 불법적인 부를 누리긴 힘들다. 직업정치인으로 살아남으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도 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네 가지 마음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들었다. 그 중 측은지심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춥거나 비 오는 날 노숙을 하는 사람을 보거나 도로 근처를 혼자 다니는 어린 아이를 보면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포상을 받거나 언론에 의인으로 나오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이기에 갖는 감정이다. 정치인은 어떤 측은지심을 가져야 할까.
삼국지를 보자. 유비는 조조의 군대에 쫓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비를 따라 나선 백성들로 인해 행군속도가 늦어졌다. 조조의 군대에 따라잡힐 위험에 처하자 누군가 백성을 버리고 신속히 행군할 것을 건의했다. 유비는 자신의 목숨조차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상을 구하는 일은 무릇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데, 우리를 따르는 백성을 어찌 버리고 떠날 수 있겠소?(夫濟大事必以人為本,今人歸吾,吾何忍棄去)’라며 거절했다. 소설 삼국지를 쓴 나관중이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유비를 높게 평가하고 추앙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가 어렵다. 살림살이가 빡빡하다.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갈등과 분쟁에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도 지역구민과 국민의 처지를 생각하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정치인을 악용하는 지지자, 후원자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가슴에 오래 남을 정치인의 DNA다. 행동은 그 다음이다. 바른 언어를 쓰고 마음을 바르게 쓰는 정치인이 많아질 때 대한민국은 한 단계 성숙한다. 내년 4월 이후에는 그런 정치인을 많이 보기를 또 헛되이 기대해 본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