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참은 중국 한나라 2대 황제인 혜제(고조 유방의 아들) 시절 신하로서 가장 높은 자리인 승상을 지냈다. 그는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거나 상인들에게 법을 가혹하게 집행하는 것을 꺼렸다. 그곳에선 돈을 벌기 위해 천태만상의 일이 일어난다. 나쁜 사람뿐 아니라 착한 사람도 함께 살아간다. 과도하게 간섭하고 혹독하게 처리하면 나쁜 사람이 의지할 곳 없어 발버둥치고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잠깐 참으면 악행을 멈추고 한 발자국 양보하면 순리대로 풀린다. 사람을 쓸 때엔 인품이 좋고 후덕한 자를 우대했고 실력이 있어도 가혹하거나 명성만 쫓는 자를 냉대했다. 그 외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황제가 보기에 놀고먹는 듯 보여 면박을 주었다. 그는 뭐라고 변명했을까. 고조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전임 승상 소하가 법령을 정비했으니 황제와 자신은 그에 잘 따르면 될 뿐이라고 했다. 

정리를 해보자. 고조 유방은 항우와 싸운 끝에 승리하여 춘추전국시대에서 진나라로 이어지는 오랜 전란을 끝냈다. 소하 등 우수한 관료와 함께 백성을 괴롭히는 복잡하고 가혹한 법률을 줄여 간략하게 정비했다. 백성은 농상공 분야를 막론하고 편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혜제와 조참이 여기서 더 잘해 보겠다고 법률을 더 만들고 세금을 더 거두고 백성을 통제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백성의 삶은 예전처럼 고단해진다. 시장을 느슨하게 하되 국가의 기반과 근본을 뒤흔드는 일만 단호하게 처리하면 된다.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에서 조참이 승상으로 있는 동안 천하가 활기차고 백성은 편했다고 적었다. 

지금은 어떤가. 경기침체, 물가상승, 미중 갈등, 전쟁(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민주화, 정보화가 완성되면서 법률정보가 대중화되고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졌다. 국회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경제적 사건ㆍ사고가 터질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기업의 의무와 책임을 가중하거나 엄벌하는 법률을 만든다. 선거라도 다가오면 국민의 입맛에 맞는 법률을 경쟁하듯이 찍어낸다. 그땐 필요한 법률일 수 있으나 시장의 반성과 자정기능이 작동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시장은 움츠리고 활력이 떨어진다. 국내 기업이 고생하는 사이에 글로벌 기업은 안방을 차지한다. 새로운 산업이 나오면 기존 법률, 기득권과 충돌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온라인플랫폼 등 규제법안을 뒤로 하고 자율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의 자율규제, 정부 지원책, 이해관계자ㆍ전문가의 참여, 성실한 자율규제 활동에 대한 보상 등을 고민하고 있다. 사업자의 자율규제를 허용하되 정부가 법령으로 테두리를 마련하고 관리할 수 있다. 

[픽사베이 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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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규제란 무엇일까. 자율이면 자율이고 규제면 규제다. 법치국가에서 규제는 행정관청의 고유권한이므로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행사해야 한다. 규제대상에게 규제권한을 위임할 수 없고 규제대상이 규제주체가 될 수 없다. 자율규제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면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기업별, 업종별, 쟁점별 등 분야와 영역별로 사건ㆍ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통제시스템을 구축, 가동하는 법률준수, 윤리경영 등 예방 활동이다. 

자율규제의 성공요건은 뭘까. 우리는 민주화, 정보화를 거치면서 법령을 잘 정비해 왔다. 오히려 시장의 자율을 해치는 과거의 규제시스템이 문제이다. 규제법률 정비가 병행되어야 한다. 법률의 차별 없는 해석과 공정한 집행도 필요하다. 치열한 시장에서 사업을 하다가 경쟁업체의 불공정행위로 인해 뒤쳐지는 순간 자율규제가 실패할 위험이 크다. 경쟁업체 모두가 준수해야 하는 자율규약이 중요한 이유다. 물론 자율규제를 핑계로 경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 자율규제가 기업별 거래조건을 유사하게 만들어 담합 수단으로 악용되는지 감시가 필요하다. 기업의 자율규제 활동과 정부의 지원, 감시 활동이 명확히 구분되고 적절하게 배분돼야 한다. 업무가 중복되거나 뒤섞이면 서로 의무를 다하지 않을 수 있다. 사건ㆍ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전가할 위험도 있다. 법령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두리뭉실하게 조심하라는 경고에 그쳐선 안된다. 자율규제로 처리해야 할 사항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 자율규제 거버넌스도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 안에 자율규제 조직과 체계를 유기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자율규제는 시장과 기업의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빡빡하고 촘촘한 법령과 기득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시장과 기업의 탄력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자율규제의 성과가 디지털 생태계에 참여하는 관련 업체, 소상공인, 근로자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자율규제는 법령준수 및 윤리 활동을 넘어 기업과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임을 잊지 말자.  

 

/ 법무법인 태평양 이상직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위원회 위원장
전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사무국 재정과장
전 (주)KT 윤리경영실 법무센터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및 AI 지식재산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상임이사
저서 :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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