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의 구독료가 줄줄이 올랐다. 넷플릭스는 함께 살지 않는 사람과의 계정 공유시 매달 5000원을 추가로 내도록 했고, 디즈니플러스는 프리미엄 요금제를 9900원에서 1만3900원으로 인상했으며, 티빙도 요금제별로 20% 이상 구독료를 올렸다. 이미 북미에서는 구독형 OTT 서비스의 가입자 수가 정체되고, 광고를 보면 콘텐츠가 무료로 제공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상황에도 불구하고 OTT 서비스들이 구독료 인상을 결정한 것은 콘텐츠 투자에 대한 비용 부담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가입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넷플릭스가 취한 전략은 양질의 콘텐츠 확보였다. 2021년 29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넷플릭스는 177억 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했다. 무려 매출액의 59%에 이르는 과도한 비용에 투자자들은 깜짝 놀라 투자를 철회했고, 주가는 690달러에서 180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지속적으로 신규 가입자를 끌어모아 콘텐츠 투자비를 메워왔던 넷플릭스의 사업모델에 비상신호가 켜진 것이다. 이에 넷플릭스는 광고형 요금제를 출시하고 계정공유를 제한하는 등 수익성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한 사례도 있다. KBS는 지난 9월 모바일 앱 'KBS+'를 선보였다. 앱에서는 KBS의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 채널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거의 모든 프로그램의 VOD 서비스가 제공된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일 뿐 아니라, 로그인조차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TV수신료 이슈로 위기에 처한 KBS가 이러한 파격적 서비스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일찍 이런 서비스를 내놓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한편 국내 OTT 사업자인 티빙과 웨이브는 합병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통상 디즈니를 비롯한 미국의 미디어 기업들은 크고 작은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추진은 '확장'이나 '강화'를 위한 기획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에 가까워 보인다. 2022년 양사는 각각 1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양사의 매출이 2000억 원대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적자 규모가 매출의 절반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적자 규모는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증가했고, 이용자 수는 정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콘텐츠 투자는 양날의 검이다.
합병으로 CJ ENM과 jTBC, 지상파 3사의 콘텐츠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이다. 그러나 합병된 플랫폼이 다양한 주주로 구성된 '공동목초지'인 이상, 경쟁력있는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넷플릭스의 제작비를 무시할 수 없고, 기존 방송 플랫폼과 자사 온라인 채널 등과의 관계를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웨이브가 지상파 3사와 맺은 콘텐츠수급 계약도 2024년 9월이면 종료된다. 광고수익 감소 등으로 적자인 방송사들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넷플릭스(Netflix)가 올 한해 피지컬 100부터 데블스 플랜, 솔로지옥 시리즈 등 K-예능을 선보인 프로그램이다. [넥플릭스 제공]](https://cdn.financialpost.co.kr/news/photo/202401/175581_151593_135.jpg)
하지만 여전히, 합병에는 이용자 규모의 확대라는 큰 기대효과가 있다. 합병이 성사된다면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될 수 있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티빙과 웨이브의 월간 활성이용자수(MAU)를 더하면 933만에 이르니, 1137만의 넷플릭스와 경쟁해 볼만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는 2억5000만 가까이 된다. 2억5000만이 분담하는 제작비를 이 쪽에서는 933만이 부담한다. 경쟁이 될 수가 없다. 국내 시장 규모로는 어떤 OTT 사업자도 어려움에 직면하리라는 결론에 이른다. 프랑스의 비방디(vivendi)나 독일의 베텔스만(BERTELSMANN) 같은 유럽의 전통적 미디어그룹들도 아마존 프라임과 넷플릭스에 OTT 시장을 다 내어주고 말았다.
증가하는 콘텐츠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용자 규모를 늘려야 한다.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적인 이유다. 알고 보면 넷플릭스의 인기 콘텐츠 중에서도 한국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이렇듯 한국 콘텐츠는 이미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연이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플랫폼은 그렇지 못하니 콘텐츠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쉽게도 OTT 플랫폼의 해외시장 진출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현지 시장과 지역 정책에 대한 심도있는 정보의 수집과 분석, 이에 기반한 전략의 수립, 그리고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 사업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정부는 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여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고, 투자환경 조성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을 시급하게 이뤄내야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K-콘텐츠를 K-플랫폼으로 즐길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 정한근 위원(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원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변인
-전 미래창조과학부 정보보호정책관
-전 미래창조과학부 인터넷정책관
-전 미래창조과학부 대변인
-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진흥정책관
